확대 l 축소

노동장관 후보, ‘이중의 미스테리’와 성찰적 대안(2)

게다가 만일 그에게 노동부장관 자리까지 올 줄 알았다면 평소에 그는 노동과 관련해 좀 더 구체적인 차원에서 신중하고 분별력을 가질 걸, 하고 후회할지 모른다. 그간 그의 발언이나 태도는 그가 노동부장관, 아니, 보통시민의 자격이 있는지 심각한 의문을 품게 하기 때문! 일례로, “노조는 머리부터 세탁해야 한다.” “쌍용차노조는 자살 특공대” “민노총은 (북한) 김정은의 기쁨조” “병원의 낮은 경쟁력은 노조 때문” “화물연대 자체가 바로 북한에서 하고 있는 것과 같아등의 발언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202210월에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직후 그는 노란봉투법? 소유권 침해는 공산주의” “(고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등 극우 발언을 예사로 했다. 이 모두는 한마디로, 노조 부정 논리, 대화 불가 논리, 적대 척결 논리, 극단적 흑백 논리다. 대한민국 헌법 33조에 나오는 노동3(단결권, 교섭권, 행동권)도 정면 부정한다. 어불성설! 그야말로 전설적인 인물’ ‘학생운동권의 황태자’ ‘노조 출신’ ‘노동운동의 대부출신이 이런 위헌적논리와 철학을 갖게 된 경위도 심각한 의문이지만, 이런 철학을 가진 이가 민주공화국 노동부장관 후보라니 더욱 놀랍다. ‘이중의 미스테리.
변절자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 “70~80년대 노동운동의 철학적 기반은 무엇이었나?”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단순히 개인-인간적 차원에서 김문수의 변절을 비난하고 한탄하는 정도에 머물 것이 아니라, 사회-역사적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인 성찰을 하고자 한다면 어떤 점을 깊이 살펴야 할까? 내가 보기에 이중의 미스테리를 가진 김문수 노동부장관 후보는 민주진보 진영의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첫째, 과연 1970~80년대의 노조운동 내지 노동운동은 어떤 논리와 철학 위에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19701113,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 항거한 전태일 열사는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유언까지 남겼다. 그 유언에 응답하기 위해 수많은 양심적이고도 용감한 대학생들이 노동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자본과 국가는 노동자를 인간으로 대우하기보다 기계나 그 부품 취급을 했고 장시간, 저임금, 무권리 노동을 강요하다시피 했다. 경찰, 검찰, 보안사, 치안본부, 중앙정보부(안기부, 국정원) 등은 권력과 자본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하며 노조나 노동운동을 철저히 탄압했다. 여차하면 조직 사건들이 터졌고 걸핏하면 친북 공작단같은 사건으로 수많은 이들이 고문과 옥살이를 당해야 했다.
그런 조건 속에서 노조나 노동운동은 노동해방계급철폐는 커녕 헌법상의 단결권과 교섭권, 행동권(파업, 농성 등)을 지켜내기에도 버거웠다. 그러기에 노동운동은 대체로 노조 인정이나 임금인상, 복리향상 투쟁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실은 노조 하나 만드는 것도 목숨을 걸 정도였다. 법은 멀고 폭력은 가까웠다. 골방 세미나에서 이론적으로 중요시된 노동해방이나 사회 혁명같은 것은 이런 현실 앞에 언감생심! 마침내 한국 자본주의는 고율의 착취도를 기초로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 등 ‘3저 호황조건과 맞물려) 1980년대 후반 이후 고도성장을 달성하는데, 바로 그런 물적 토대를 기초로 서양과 유사한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이는 역으로, ‘노동해방을 마음속에서나마 상상하던 모든 노동운동 세력까지 체제 속으로 통합해 낼 물적 토대였다. 노동의 생산성이 (자본과 권력을 매개로) 노동의 순치성을 드높이는 역설!
결국,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던 전태일 열사의 유언은 여전히 허공에 떠돌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회운동을 하건, 그 내용과 방향이 얼마나 건강하고 바른 것인지에 대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특히 자본주의에 대해 깊이 공부해야 한다(<고병권의 자본 강의>는 그 출발점으로 좋은 텍스트다). 전태일의 유언을 180도 배신하지 않으려면!
둘째, 그토록 엄혹하던 시절에 목숨을 걸 정도의 용기와 결단으로 노동운동에 발을 담갔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180도 전향을 한 뒤에 그저 (부끄러운 마음에) 개인적으로 조용히사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반대편의 앞잡이가 되어 목소리를 최대한 크게 하는 식으로 변신해 갔는가, 하는 문제도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흔히 우리는 이런 문제 앞에 그것은 당사자의 성격 문제라고 치부하고 만다. 물론, 개인적 성향이나 성격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과 사회적 조건 사이의 상호작용일 것이다. 다양한 노동운동가들 중엔 실로 다양한 철학과 논리가 있겠지만, 가장 공통된 철학 내지 구호는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점이다.<계속>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