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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중국·신자유주의로 경제 망친 자들(3)

최저임금을 포함한 임금인상률이 물가인상률을 밑돌았고 불경기로 인해 자영업자의 소득이 줄어든 탓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주가 하락으로 인해 실질자산 가치도 모든 계층에서 하락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내려 150여 개의 대기업에 집중 혜택을 주었지만 그것이 투자를 촉진했다는 증거는 없다. 종부세 인하로 고가주택과 다주택 보유자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었지만 소비 진작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판국에 정부의 재정지출까지 줄였다. 중앙정부의 2023년 총지출은 611조 원으로 2022년 추경 포함 총지출보다 70조 원이나 적었다.
이것은 경제학 교과서에서 본 하향 나선형 악순환의 전형이다. 사회의 총수요는 순수출(수출-수입), 민간 소비, 기업 투자, 정부 지출 네 가지로 구성된다. 국민소득의 크기를 결정하는 총수요의 네 요소가 모두 하락세를 보이면서 서로 악영향을 주었다. 모든 경제지표는 이 악순환이 20222분기에 시작해 20248월 현재까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경제학자는 무얼 하느냐고 질책하지 마시라. 경제학은 원시적인 수준의 학문이다. 경제학자들은 불황을 불황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지하는 경우에도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다. 드물게 원인을 파악한 경우에도 약효가 바로 나는 처방을 찾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학자가 효과 있는 정책을 내놓는 경우가 가끔은 있다.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수는 없지만, 경제학과 경제학자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 그렇지만 오늘 한국 상황에서는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가 없다. 의사의 처방은 환자가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효과를 낼 수 있다. 국정 운영 최고책임자가 귀를 닫고 눈을 감는 경우에는 경제학자가 괜찮은 처방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보기에,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경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한국 경제는 선장이 문을 걸어 잠근 채 술을 마시고 잠만 자는 함선과 비슷하다. 정한 목표와 항로 없이, 조류에 실려 어디인지 모를 곳으로 떠내려간다. 나는 젊은 시절 경제학을 배운 경제학도일 뿐이다. 한국 경제 불황의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릴 능력이 없다. 기껏해야 가설(假說) 수준의 견해를 가졌을 따름이다. 그럴듯하다고 믿지만 논리와 데이터로 정밀하게 입증할 능력이 없으니 가설이라고 하는 게 맞다. 윤석열의 시대착오적 이념외교가 불러들인 대중 수출 급감이라는 외부 충격이 신자유주의 긴축 정책과 결합해 한국경제를 하향 나선형 악순환에 가두었다는 가설이다.
정통 케인즈주의 거시이론과 신고전파종합경제학자들의 가속도원리 등으로 이 가설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무역수지, 소매판매, 민간투자, 정부지출 등 모든 경제지표가 20222분기를 기점으로 하향 추세를 보였다는 사실은 이 가설에 약간의 설득력을 부여한다.
요약하면 이런 이야기다. 중국 수출의 급감이라는 외부 충격이 부자 감세, 긴축재정, 임금인상 억제 등 중산층과 서민의 가처분소득을 줄이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과 결합해 내수를 위축시킴으로써 한국 경제를 장기 불황에 빠뜨렸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우울하지만 없다. 대중 수출 급감이라는 외부 충격은 우연히 온 것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초했다. 그는 한미일 군사동맹 또는 안보협력으로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추종하면서 당선인 시절부터 공공연하게 탈중국 또는 반중 노선을 내세웠다. 중국은 공산당과 정부가 명령하고 규제하는 통제형 시장경제체제다. 정부가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한국 상품의 수입을 억누를 수 있다. 윤석열은 실리와 국익을 도외시하고 가치와 이념을 추종한 자신의 외교정책이 외부충격을 불러들였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외교노선을 바꾸지 않을 것이며 긴축정책을 그만두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바람직한 외부 충격이 찾아와 상향 나선형 선순환을 만들어주는 행운이 찾아들지 않는 한, 한국 경제는 앞으로도 긴 시간 불황의 어두운 골짜기를 헤맬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다. 경제학 공부를 그만둔 지 십 년이 넘었다. 경제학 연구의 최근 동향을 모른다.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 데이터를 면밀하게 살피지도 않는다. 경제학과 무관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 말이 되는 경제이론과 헛소리를 구별할 정도의 능력은 아직 지니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들과 경제부처 고위 관료들이 한국 경제에 대해서 하는 말은 대부분 헛소리다. 경제학자와 경제전문가는 다 어디에 갔는가? 왜 헛소리를 헛소리라 말하는 이가 손꼽을 정도로 적은가? 누가 내 가설이 틀렸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최소한 말이 되는 수준에서라도 윤석열 정부가 한국 경제를 회생의 길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논리와 데이터로 주장해 주면 고맙겠다. 합의는 하지 못해도 토론은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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