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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맹종에 북 흡수통일, 日 극우 아류들의 망상(1)

윤석열 정부가 일본의 우익과 서둘러 손잡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10대 조선 총독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까지 친일 인사를 중용하고 독립운동의 가치를 폄훼하며 독도 조형물까지 철거하는 괴이한 행동을 벌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거다. 일련의 친일 소동으로 우리 사회에서 역사 논쟁이 확산되자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또다시 곤두박질 쳤다. 최근의 여론조사는 상식적이고 순수한 민족의식이 크게 훼손되는 데 대한 중도성향 유권자들이나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의 불만이 작용했음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이데올로기의 성벽을 더욱 견고하게 다지며 국민과 멀어지고 있다. 심지어 한동훈 대표의 국민의힘도 이런 역사 논쟁에 대해 공식적 입장을 내놓지 않고 방관자 입장에 머무른다. 역대 어느 대통령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고립적 행태다. 일단 윤 대통령과 그 주변이 탈중국·친일본의 주술적 이데올로기에 포획되었다는 설명이 떠오른다. 윤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면면이나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면 그럴듯해 보인다. 지난 정부가 반일 종족주의자들이라며 감정적으로 반발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닐 것이다.
노태우 이후 지난 7명의 대통령들은 비록 이념은 매우 달랐다 할지라도 주변 4대 강국과 선린·우호관계를 형성하여 평화로운 환경에서 대한민국의 영향권을 확장하는 국가 대전략을 대체로 고수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탈중국·친일본 지향성은 기존의 국가 대전략으로부터 벗어나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상을 일거에 변화시키려는 급진적인 정책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 우방에서 벗어나게 되니까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사실상 해제됐고 북··러가 반()대한민국 세력으로 결집될 위험이 초래됐다. 지난 30년 이래 대한민국에 가장 나쁜 외교·무역 환경이 지금 출현한 것이다. 부산 엑스포 유치에 실패하고 수출이 위축되었으며 국가의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다.
정작 놀라운 건 이것이 뜻밖의 피해가 아니라 바로 이 정부가 원하던 것이라는 점이다. 적어도 지금의 집권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믿음대로 대륙으로부터 대한민국이 이탈하는 중이며, 그것은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11월에 인도·태평양과 그 너머를 향하는 한··일 안보협력 문서(TSCF : Trial Security Cooperation Framework)가 체결되면 사실상 한··일 삼국의 준동맹이라 할 수 있는 집단안보 체제가 완성된다. 윤 정부는 대한민국에 이런 안보상의 이익은 다른 피해를 다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본다.
그러나 한··일 삼국 집단안보 체제가 왜 대한민국에 이익인지도 분명치 않다. 우리 군대가 미국·일본과 함께 남중국해나 대만 해협으로 달려가 중국 군대를 차단하는 것이 왜 좋은 일일까. 이에 대해서도 윤 정부는 일관되고 책임 있게 설명을 내놓은 적이 없다. 다만 한··일은 자유와 법치를 추구하는 가치 동맹이라는 설명이 있지만 이것은 무정부적인 국제정치에서 설득력 있는 이론이 아니다. 민주주의 연대라는 가치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억제하는 데도 무력하다는 현실을 보라. 역사는 같은 이념의 가치 동맹이 아니라 2차 대전 당시 이념이 전혀 다른 연합군과 소련이 협력해 독일을 패퇴시켰다는 것이 더 성공적이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아예 문명관이 다른 미국과 사우디·UAE와 같은 나라들의 협력이 더 현실적이다. 냉전 종식 이후 민주주의 국가들 간에 가치 동맹이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적어도 윤 정부는 국제정치를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면 일본 우익에 사실상 복종하는 듯한 이 정부에게 긍극적인 목표이자 이상이라는 것이 사실상 있느냐는 질문이 떠오른다. 이것이 도대체 라는 질문에 대한 희미한 답이 될 것이다.
윤 정부는 잃어버린 30으로 깊은 상실감에 빠진 일본 우익이 소환한 1941년의 지정학에 사실상 포획되었다고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사이비 이론이며, 실증적으로 검증될 수 없는 망상에 가깝다. 그 당시 일본은 대공항의 여파로 출현한 서방의 보호무역주의와 석유 금수조치로 인해 아시아의 문명국이자 지도국이라는 대동아공영권의 이상이 무너질 위기였다. 그 돌파구는 유전이 있는 네덜란드령의 동인도로 진출하여 자급자족형 생존 공간을 마련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차단할 것이 확실시되었기 때문에 유럽 전쟁에 참전하려는 미국을 태평양에서 저지하기 위해서는 태평양 함대의 주력이 있는 진주만을 폭격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본이 지배하는 동아시아와 인도양을 하나의 전략 공간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는 일본이 동아시아 지역 패권자라는 위상을 굳히는 마지막 도박이었다. 물론 이런 시도는 1942년의 미드웨이 해전으로 파탄이 나지만, 그 위험을 알고도 인도로 가야만 한다는 일본 엘리트들의 절박성이 훨씬 컸다.<계속>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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