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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을 수정할 의사도 전혀 없다. 의사들이 돌아올 때까지 비상진료체계를 돌리겠다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 알고 한 말은 아닌 듯하다. 그는 ‘문과 1등 괴물’ 검사였다. 지금도 검사 시절보다 나은 게 없다. 오히려 더 나빠진 것 같다. 의견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아예 모른다. 자기만 옳다고 생각한다. 권력으로 만사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전공의들은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을 태세다. 의과대학 학생들은 의사 자격을 따야 하니 어떤 방식으로든 복귀하겠지만 졸업한 뒤에 전공의를 지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올해 휴학하거나 유급한 학생들과 새로 들어온 학생들이 뒤엉켜 내년 의과대학 교육 현장은 아수라장이 될 게 확실하다. 지칠 대로 지친 전문의들이 더는 견디지 못해 사표를 내면 응급실과 수술실이 전체적으로 멈춰 설지도 모른다. 대학병원을 포함한 대형 병원들은 이미 경영난을 겪고 있으며 앞으로 더 심각한 재정난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의사들은 ‘이과 1등 괴물’이라는 조롱을 받는다. 그들도 윤석열과 마찬가지로 의견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에 무지하다. 자기만 옳다고 생각한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 언젠가는 국민과 정부가 자기네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고 믿는다. ‘의료대란’ 사태는 잘난 ‘문과 1등’ 대통령과 역시 잘난 ‘이과 1등’ 의사들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다. 윤석열은 대통령의 권력 앞에 조아리지 않는 의사들 때문에 낭패를 볼 것이다. 의사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검사를 대통령으로 뽑은 자신의 행위를 후회할지 모른다. 나쁠 건 없다.
대통령이 낭패를 보고 의사들이 후회를 해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내가 할 일은 아니다. 내가 뭐라고 한다 해서, 어떤 해법이나 절충안을 제시한다고 해서 대통령이나 의사들이 들을 리 없다. ‘의료대란’은 건강수명 종료가 임박한 고령자들을 집중 타격하게 된다. 젊은이들은 산업재해나 교통사고로 심각한 외상을 입은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다. 고관절 골절을 비롯한 낙상사고, 뇌경색이나 뇌출혈 같은 뇌혈관 질환, 암, 심혈관 질환 등은 적절한 치료를 신속하게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가 건강을 회복하기 어려워진다. 건강수명과 평균수명이 모두 줄어든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와 휴학한 의과대학생들도 행복하지는 않다. 인생 행로가 꼬이고 세워두었던 계획이 다 어그러진다.
윤석열은 자신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의사들과 고령층을 괴롭히고 있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개혁은 저항을 부른다는 주장은 옳다. 하지만 저항이 있다는 사실이 개혁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증명하는 건 아니다. 합리적이든 아니든, 간호법 제정이든 의료법 개정이든, 의사들은 자기네 이익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정책에 반대하고 모든 개혁에 저항했다. 압도적 다수 국민은 정책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의사를 증원하는 데는 찬성하지만 이렇게 과격하고 무지막지한 방식으로는 하지 말라고 한다. 부작용이 덜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라고 한다.
험한 세상을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나는 ‘의료대란’을 주어진 환경으로 받아들인다. 폐렴 예방주사를 맞으라는 보건소의 안내 문자를 받을 때마다 ‘국가 공인 노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긴다. 병원과 의사에게 최소한으로만 의존하는 노인이 되자고 결심한다. 건강수명을 연장하는 데 필요한 생활습관을 익히는 것 말고는 다른 대책이 없음을 거듭 확인한다. 그래서 행동 방식을 몇 가지 고쳤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근력운동을 더 열심히 한다. 나이 들면 믿을 건 근육뿐이라지 않는가. 하지만 뼈나 관절 부상 위험이 따르는 동작은 되도록 피한다. 운전을 할 때 전후방 교통 흐름을 예전보다 더 주의 깊게 살피고 과속을 삼간다. 공사장 근처에서는 무언가 떨어지지 않는지 위를 확인한다. 새벽에 화장실 갈 때 넘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뇌혈관 질환을 예방하려면 저밀도 콜레스테롤(LDL) 많은 음식을 피해야 한다고 해서 좋아하던 곱창과 삼겹살을 끊었다. 병원과 관련한 목표도 세웠다. 죽을 때까지 대형병원 응급실과 수술실에 가지 않는 것이다. 20년 전 무릎 연골 절제수술을 받은 이후로는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적이 없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몇 번 갔을 뿐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문제가 있으면 동네 병‧의원에 간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는 외과, 내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병‧의원에 걸어서 갈 수 있다. 웬만한 것은 거기에서 다 해결하며 산다. 뭐하러 굳이 큰 병원에 간단 말인가.
오래 전 보건 관련 업계에 잠깐 몸담았던 자로서 ‘의료대란 생존법’에 대해 신통할 것 없는 이야기를 했다. 독자들이 ‘의료시스템 붕괴’라는 말이 풍기는 공포감에 전염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으니 가볍게 참고하시기 바란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고 대형병원 응급실이 문을 닫아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야 한다.<끝>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