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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행히도, 위 해법들은 에너지를 더 많이 쓰게 되고, 내 집 이외의 공간에 더 많은 열을 뿜어대며, 결과적으로 지구 열탕화(‘찜통 지구’)를 부채질한다. 처음엔 선풍기 하나만 해도 시원했지만, 나중엔 방마다 에어컨을 켜도 소용없는 때가 온다. 이런 연관성을 꿰뚫어 본다면 우리는 ‘차라리’ 포기하거나 절제하는 식으로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다. 불편함 혹 귀찮음을 감수하는 힘을 키우는 게 관건이다.
나의 경우, 이번 더위에도 일반 선풍기만 썼다. 에어컨이나 제습기, 공기청정기는 없다. 에어컨 없이 견디려 한다. 너무 더워 힘들 때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반신욕을 반복한다. 아침저녁으로 해가 약할 때 텃밭 일을 조금씩 하고 ‘차라리’ 땀을 흠뻑 흘리고 비누 없이 물 샤워만 해도 천국이다. 머리를 감고 말릴 때도 책받침이나 손부채를 쓴다. 땀에 쩔은 옷이나 수건, 양말은 샤워하면서 발로 철벅철벅 세탁한다. 손빨래 아닌, 발빨래! 세탁기는 한꺼번에 많이 할 때만 쓴다. 발빨래로 한 옷이나 수건을 강한 햇살에 말리면 까슬까슬해 좋다. 따끈따끈한 햇살이 태양광발전(3KW)으로 가정용 전기를 자급시켜 주고 빨래까지 말려 낸다.
두 번째 방법(개인적 합리성으로 인한 사회적 비합리성을 교정하거나 예방하기)은 앞서 말한 자동차의 예를 들면 쉬울 듯하다. 자동차 쏠림으로 인한 ‘교통체증’ 및 ‘공기 오염’을 줄이려면 맨 먼저 대중교통 내지 공공교통(버스, 철도, 전철)을 대폭 개선(요금, 전용차로, 서비스 등)하면 된다. 가능하면 그 에너지도 모두 청정재생가능에너지(RE100)로 전환하면 좋겠다.
동시에 안전한 자전거 도로와 샤워 시설까지 잘 만들어 통학이나 출퇴근 시에 자전거를 대폭 활용하게 한다. 또, 프랑스 파리나 덴마크 코펜하겐의 ‘15분 도시’ 내지 ‘컴팩트 도시’처럼 걷거나 자전거로 15분 이내에 중요한 볼일을 다 보게 도시계획을 다시 짠다. 인구 집중의 상징인 (서울 같은) 초거대도시보다 균형 잡힌 전원도시를 읍면 단위로 만들어 인구를 분산하는 것도 시급하다. 만일 명절 때의 차량 쏠림을 구조적으로 분산하려면 명절 연휴 기간을 (민주적 합의로) 최대한 늘릴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방법은 결국 민주주의로 풀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그만큼 성숙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택배나 포장 등으로 인한) 쓰레기 문제를 사회적 합리성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박스 테이프나 포장 재료를 자연소재로 만들도록 법제화하거나, 읍면 단위로 재활용센터를 크게 만들어 체계적으로 재활용률을 높이는 것도 좋겠다. 무엇보다,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 소재를 처음부터 사용하지 못하게 규제함과 동시에 대체물을 개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와 비슷하게, 지구 열탕화를 저지하기 위한 국가적, 세계적 노력을 전면 강화해야 한다. 6대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를 방출하는 모든 사업장과 가정이 더 이상 방출 못하게 ‘비상 대책’이 절박하다. 국회도 나서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비상상황에서 잠시나마 푸른 하늘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기억을 되살려 보시라. “코로나 때 죽었던 ‘경제’를 걱정하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경제’는 왜 하나? 생존과 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경제는 과감히 버려야 산다! 인류의 집단 생존을 위해선 근대 이후 당연시해 온 편리함, 신속함, 있어 보임, 가성비, 이기심 등의 가치 대신 돌봄, 나눔, 아름다움, 버림, 어울림, 자유로움 등의 가치를 공유하고 실천하는 것이 좋겠다. 이 모두, 사회적 합리성을 고양하는 밑거름이다. 그래서 나는 외친다. “조금 먹고 조금 싸자!” 그리하여 “모두 건강하게 살자!”
셋째는 개인적 합리성을 극도로 조심스레 접근하면서도 사회적 합리성이 높은 대안을 찾는 것인데, 앞서 말한 좋은 아이디어를 종합적으로 실천(조화)하면 된다. 흔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되겠느냐, 사회가 변해야지…’ 하는데, 이는 반만 옳다. 개인과 사회가 ‘같이’ 변해야 하니까! 물론, 이 둘의 조화를 이루는 가장 좋은 출발점은 자본주의 합리성을 넘어서는 것(탈자본)이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될 일도 아니고 나만 깨친다고 될 일도 아니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되 하나씩 깊어져야 한다.
나의 경우, 택배로 오는 박스들은 (테이프를 떼어내고) 납작하게 만들어 텃밭의 풀을 멀칭용으로 덮어주는 식으로 재활용한다. 비가 오거나 오래 되면 박스 종이들이 삭아서 흙으로 돌아간다. 또, 생태화장실에서 나오는 똥오줌을 분리해서 받아 잘 삭힌 뒤 텃밭에 거름으로 쓰는 것도 나의 비법이다. 개인적으로도 물과 전기를 절약해 좋지만, 사회적으로 수질 오염 예방과 흙 생태계 회복에도 좋다. 만일 ‘밥이 똥이 되고, 똥이 밥이 되는’ 이런 모델을 사회 전반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개인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의 조화가 이뤄지지 않을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