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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풍선에 속수무책인 국방부 관료주의

홍종학 칼럼
전 국회의원

몇 달째 북한에서 보낸 쓰레기 풍선들이 수도권 상공을 떠다니고 있다. 쓰레기 풍선의 수가 늘어나면서 화재 사건이 잇따르고, 공항에서는 비행기 이착륙이 중단되는 사고도 이어지고 있다. 재작년에는 북한에서 보낸 무인기가 영공을 침범해 서울 항공을 휘젓고 다니다가 돌아간 일도 있었다. 첨단 과학기술 시대에 풍선이나 무인기를 사전에 포착하고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증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은 항상 새로운 무기의 전시장이었다. 전차와 전투기는 1차 세계대전에서 첫선을 보였지만 아직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줄 만한 성능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1차 대전에 참전했던 일부 군인들은 새로운 무기의 가능성을 주목했다. 전차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독일의 롬멜은 전투기와 전차를 앞세운 전격전(Blitzkrieg)을 통해 유럽 전역을 충격에 빠뜨리며 점령해 나갔다. 미국에서는 전차의 역할에 대해 통찰력을 갖춘 패튼이 전통적인 보병 지휘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규모 전차 부대 훈련을 통해 미래의 전투를 대비했고, 이를 바탕으로 패퇴하는 독일군을 속도전으로 괴멸시키는 전공을 올리기도 했다.

2차 대전에서 미국 국방부는 과거와는 달리 대학이나 연구소의 과학자들과 적극적인 협업을 추진했다. 일부 군 지휘관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족한 전쟁 예산을 쪼개 대규모로 민간에 투자했다. 미국 주요 대학의 핵심 연구자들을 총망라한 국가방위연구위원회(NDRC)를 설립하고 이 기구에서 휴대용 레이더 등을 개발해 대서양에서 독일의 유보트를 포착했다. 이는 대서양에서 유보트를 몰아내 안정적인 보급로 확보로 전황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다. 당대 최고의 핵물리학자였던 오펜하이머를 책임자로 하는 ‘맨하탄 프로젝트’를 통해, 이론으로만 가능했던 원자폭탄 개발로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를 통해 국방 분야에 있어 민간 과학기술자들과의 개방형 혁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미국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후에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세워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민간의 첨단 과학기술 연구를 적극 지원해 왔다. 기상위성, GPS, 드론, 스텔스 기술이나 심지어 인터넷이나 인공지능 등 현대의 핵심 기술들의 초기 연구는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지원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구 지원을 통해 국방력을 향상했을 뿐 아니라, 첨단 산업에서 미국의 선도적 위치를 유지하는데 기여했다. 미국 국방부는 유도탄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컴퓨터와 반도체 개발을 적극 지원했으며, 품질 우선 정책에 따라 신생 기업인 인텔의 반도체를 고가에 매수했다. 인텔이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로 우뚝 서게 된 계기가 되었다.

최근 중동이나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역시 지난 20여 년간 전투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장이 되고 있다. 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취합하여 인공지능이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로켓과 드론 공격이 이루어지고, 이를 사전에 포착하여 격추하는 방어 능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고 있다. 각종 용도의 로봇이 전장을 누비고, 이를 실시간으로 드론이 중계하고 있다.

이제 미래는 정밀 유도탄 개발에 따라, 사전에 로켓을 탐지하고 파괴하는 레이더의 성능이 전쟁의 향방을 좌우하게 되었다. 적의 레이더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전자전이 전쟁의 향방을 가를 것이며, 전투의 양상은 인공지능의 지휘를 받는 로봇과 드론에 의존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이미 드론 작전사령부를 설치해서 드론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수백 대, 수천 대의 드론을 이용한 불꽃 쇼를 펼칠 정도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쓰레기 풍선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정부의 대응은 이해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군 지휘관들이 첨단 과학기술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갖추기는 어렵다. 군 지휘관들은 대체로 기존의 무기를 중심으로 한 전투 계획에 따른 훈련이 중요하기 때문에, 미래의 무기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방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한 이유 중의 하나는 2차 대전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경우와 같이 민간의 첨단 기술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군 무기 체계를 끊임없이 현대화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몇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쓰레기 풍선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이유는 개방형 혁신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책 또는 민간 연구원이나 우수한 중소기업 중에는 쓰레기 풍선을 조기에 포착해서 안전하게 격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 기술자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언제든 쓰레기 풍선에 위험 물질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을 이대로 방치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아마 정부 관계자들은 현재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서 대응책을 만들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첨단 기술을 갖춘 민간의 연구소나 기업에게 해결책을 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전쟁에서는 언제나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무기에 마주칠 가능성이 높다. 아군의 희생이 커지기 전에 신속하게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인기나 쓰레기 풍선을 작은 소동쯤으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이들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우리 국방의 실력이 드러나고 그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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