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는 국힘당 공직선거 후보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했는가? <뉴스토마토>를 비롯한 여러 언론의 보도를 보면 아무래도 그랬던 듯하다. 여당의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좌지우지했다면 대통령실이나 정부 운영에도 개입하지 않았겠는가? 그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게 사실이라면 무슨 문제가 있는가? 그 자체가 중대한 문제다. 우리는 김건희 씨를 공직자로 선출한 적이 없다. 헌법과 법률은 대통령 배우자에게 여당과 정부의 인사 또는 행정에 관여할 그 어떤 권한도 주지 않았다. 대통령 부인이 남편의 권력을 등에 업고 국가 운영에 부당하게 개입하면 법률적으로는 범죄, 정치적으로는 국정농단이 된다. 국정농단을 방치하면 나라가 엉망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겪어보아서 안다.
김건희 씨의 과거 범죄 의혹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윤석열 검사와 혼인하기 전과 후에 도이치모터스 등 기업의 주가 조작에 가담해 큰 이익을 챙겼다는 의혹이다. 그 밖에도 여러 범죄 혐의가 있지만 이것 하나만 이야기해도 충분하다. 관련자들의 재판에서 법원이 인정한 증거들과 최근 검찰 내부자가 언론에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사실에 비추어보면 김건희 씨는 마땅히 주가조작 공범으로 법정에 서야 했는데도 검찰 수사를 피했고 기소되지도 않았다. 남편이 검사,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 대통령이 아니라 평범한 공무원이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검찰은 김건희 씨의 주가조작 범죄 혐의를 무혐의 종결하지도 않고 기소하지도 않은 채 여러 해 시간을 보냈다. 조만간 디올 백 받은 일과 함께 불기소 처분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돈다. 주가조작에 가담한 것은 김건희 씨의 잘못이지만 범죄를 덮는 것은 대통령과 검찰의 잘못이다. 윤석열과 정치검사들은 모든 국민이 법 앞에서 평등하며 사회적 특수계급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헌법 제11조를 공공연하게 짓밟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여당 공직선거 후보 공천 개입을 포함한 김건희 씨의 ‘국정농단’ 의혹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사소하다. 주가조작과 디올 백 수수는 지난날의 개인적 범죄인 반면 대통령 부인의 국정농단은 헌정질서 파괴 범죄다. 어느 것이 더 중대한지는 따질 것도 없다.
김건희 씨의 국정농단 의혹 세부 내용을 열거하지는 않겠다. <뉴스토마토>를 비롯한 여러 언론과 유튜브 저널리즘 채널의 보도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나는 사실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 그런 일이 생긴 이유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 질문해 대답해 보겠다. 첫째, 김건희 씨는 왜 정치와 국정에 개입할까? 둘째, 왜 하필 지금 시점에서 증거가 드러나는가? 대답을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자연이 진공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권력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서라도 나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힘’이다. 권력은 강제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권력자가 반드시 강제력을 행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동의를 얻고 협력을 받을 수 있으면 강제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강제력은 꼭 필요할 때 제한적으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하는 권력자를 우리는 민주적이고 유능한 리더라고 한다.
윤석열은 어떤가? 민주적이지도 유능하지도 않다. 타인의 공감을 얻어 협력을 끌어내는 방법을 모른다. 그럴 의지도 없다. 그렇게 해본 경험도 없다. 권력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목표의식이 뚜렷하지 않다.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다. 술을 많이 마신다는 소문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공무원인데도 출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는 그저 권력 자체를 탐하며, 권력자로서 군림하기를 즐길 따름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이다. 3권 분립이 이루어져 있지만 대통령은 국회나 법원보다 훨씬 강하고 폭넓은 권한을 보유한다. 이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대통령은 집권세력 내부에 고도의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5년 간 추구할 국정 목표 설정부터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단기 과제 결정, 과제 수행에 투입할 정책수단 선택, 정책 수행 능력을 가진 인재 확보, 정부와 여당의 협력 체제 구축,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 분위기 조성,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는 소통과 홍보 방안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조직적 체계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은 일관성 있는 태도로 목표를 추구하면서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권력의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집권세력 내부에는 고도의 질서라고 말할 만한 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은 단지 대통령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 진정한 의미의 권력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저런 행사와 기념식에서 앞뒤가 맞지 않고 현실적 의미도 없는 말을 쏟아낸다. 목적이 불분명한 외국 방문 일정에 돈을 물 쓰듯 한다. 국가재정 관리부터 의료대란 대처까지 무엇 하나도 맵시 있게 완수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거대한 권력의 공백이 발생했다는 말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