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모략(謀略)은 생각을 드러내는 양모(陽謀)와 생각을 숨기는 음모(陰謀)로 구분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략에 대해 무언가를 음험하게 숨기는 음모를 떠올리나, 사실은 양모가 훨씬 고단수 전략이다. 내 의도는 이러하니 대응해 보라는 식으로 패를 까면서 상대방을 압도하는 모략가는 이미 상대방의 약점을 손에 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양모가는 쉽게 건드리거나 제어하기가 훨씬 어렵다. 정치 브로커 역술인, 주가 조작범과 같은 다양한 간신들이 김건희 여사 주변에서 설치는 변태와 엽기의 파란만장한 세태에서 우리는 모략의 변화무쌍함을 목격하게 된다.
최근 여러 언론에 대고 무수한 말을 쏟아내는 명태균 씨의 경우는 전형적인 양모가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물론이고 여러 유력 정치인과의 관계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명 씨는 “내 손 안에 모든 게 들어 있다”는 신호를 용산에 발신하는 것이다. 공개된 녹취록에서는 “여차하면 내 XX 다 터자뿌겠다(터트려버리겠다)”고 말한다. 또한 “내가 이렇게 뭐 협박범처럼 살아야 되겠어요?”라며 지난 총선 때 대통령 부부를 협박했다고 밝힌다. 요즘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압수수색에 대비하여 제2, 제3의 폰이 있음을 밝히며, 정권의 탄생 비밀이 자신에게 저장되어 있음을 반복적으로 암시한다. 병적인 다변증(多辯症 logorrhea)으로 의심될 만큼 말이 많은 명 씨는 하루 종일 언론에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며 끊임없이 용산과의 특수한 관계를 풀어놓고 있다. 이런 명 씨에 대해 용산은 어떤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아예 입도 벙긋하지 못한다. 대통령 부부가 명 씨에게 무언가 약점이 잡혀 있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참으로 놀라운 양모 전략이다.
밝은 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명 씨와 달리 평소에는 권력자에게 온갖 아부와 아첨을 하다가 어두운 곳에서 모략을 꾸며 다른 정적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다는 구함좌폐(構陷坐廢)로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도 있다. “한동훈 공격하면 여사가 좋아해”라며 <서울의 소리>의 이명수 기자에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불리한 기사를 쓰도록 사주하는 김대남 씨의 경우다. 김 씨는 실제로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소의 총선 여론조사 정보를 빼내서 기사화되도록 했고, 올해 7월의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서 원희룡 후보가 이 기사를 근거로 한동훈 대표를 공격하는 명확한 결과를 만들었다. 이런 ‘공격 사주’는 명확한 물증이 나왔기 때문에 이미 의혹 수준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녹취록에서 총선 당시 이원모 대통령실 비서관이 공천을 받은 데 대해서도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을 지목하며 “아주 그냥 여사한테 그냥 이원모 하나 어떻게 국회의원 배지 달게 해주려고 저 XX을 떨고 있다”고 비난한다.
용산은 양모가이건 음모가이건 전혀 대처하지 못한다. 역술인 천공이나 주가 조작범 권오수, 이종호 씨 등이 권력을 사칭하며 활개치는 동안 용산은 그 어떤 조치를 한 적이 없다. 이들이 권력자에게 접근하여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었다 할지라도 긁는 손톱에는 이미 독이 묻어 있었다. 그로 인해 상처가 나고 곪아 터져도 환부를 도려내지 못해 부패한 냄새가 진동을 해도 말이다.
이런 엽기적 간신이 활개 치는 배경에는 분별력이 없는 권력자, 즉 혼군(昏君)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중국 역사의 권위자로 사마천학회장인 김영수 교수는 그의 저서 <간신론> <간신학> <간신전> 3부작에서 “권력과 돈을 탐하는 간신과 혼군의 만남이야말로 나라가 절단나는 최악의 조합”이며 현대에도 그 엽기적 세태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올해 총선을 전후하여 현대판 외척 세력인 김건희 여사 관련 인물들과 현대판 환관 세력인 소위 윤핵관이라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고기 덩어리를 서로 먹으려고 이전투구를 벌였던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김 여사와 한동훈 대표 간의 갈등은 이제 비밀도 아니며, 그로 인해 대통령실과 당 대표 간 소통마저 단절됐다. 국정의 추진 동력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최근 정치계의 정간(政奸), 언론계의 언간(言奸), 학계의 학간(學奸) 등, 스펙으로 포장된 소위 엘리트들이 권력을 파멸로 이끄는 걸 경계하자는 취지로 눈부신 저작들을 저술했다. 그는 국회와 여야 정당을 대통령과 완전히 분리시키고, 대통령 부부를 맹종과 아첨의 간신들 속에 가두어버리는 간신의 전성시대가 바로 지금이 아닌지, 심각하게 되돌아볼 것을 촉구한다.
만일 윤 대통령이 지금의 국정 난맥을 개혁하려면 썩은 상처를 완전히 도려내야 한다. 간신에게는 절대 용서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전문성을 기준으로 인재를 발탁함으로써 정부를 다시 만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대통령 면전에서 개혁을 요구할 책임이 있는 한동훈 대표 역시 추석 연휴 용산의 만찬에서 단 한마디도 직언을 하지 못했다. 지난 겨울 서천의 화재 현장에서 완전히 윤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은 한 대표가 이제 와서 새삼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 역시 변화와 개혁의 길에 나서지 못하고 용산의 주문대로 특검안을 국회에서 부결시키는 데 앞장선 이상 간신의 무리에서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이들이 정치적 소명과 책임을 망각하는 바로 그 틈이 간신들이 파고드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