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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붕괴의 전조 ‘사교육비 역대 최대’(3)

김동춘 칼럼
좋은세상연구소 대표
그렇게 많은 지출이 세계를 선도하는 과학자나 인문학자를 배출하는 것과는 무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퍼즐게임의 승리자들은 자신에게 많은 투자를 해준 부모님에게 감사할지언정 그 게임 밖의 사회, 자신의 지위를 보장해줄 수도 있는 사회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갖기는커녕 언제나 자기보다 노력과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극도의 분노와 박탈감을 갖게 된다. 수능성적을 둘러싼 공정에의 집착은 세상의 변화와 무관한 우물 안 개구리들 간의 죽고 살기 전쟁이다.
우물 밖에서 천재지변이 발생하여 우물이 막히거나, 우물에 독이 들어오면 모두가 죽는다.
그런데도 시험 성적이 전부인 줄 안다. 그리고 자신들이 ‘노력’과 능력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정투쟁이 만연한다. 그러나 수능성적대로 사회적 보상의 서열을 배치할 수 있는가? 그런 공정은 도달 불가능한 목표다.

의사, 변호사, 그리고 명문대 졸업생이 성적 서열만큼의 지위를 평생 누릴 수 있는가? 회사 입사에서 대학 졸업장의 효과는 갈수록 떨어진다는 자료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다수의 한국인들이 이런 현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교육 투자를 줄일 의사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경쟁 그 자체, 그리고 성적 변별의 공정성을 신앙처럼 받아들인다는 점이 문제다. 막대한 사교육 투자의 주체인 한국의 386 세대는 80년대 말 이후 명문대 졸업장을 무기로 대거 중산층으로 편입된 최초의 세대이고, 이들이 견지하는 능력주의와 공정에 대한 집착이 사교육을 부추긴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사회불신이 심각하고, 사회복지나 안전망이 취약한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경쟁 그 자체가 더 격렬하고, 시험을 통한 변별이 신화로 자리 잡은 것이 더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불가피한 점이 있으나, 그 경쟁이 대학 입학의 관문에 과도하게 집중된다는 것이 입시 문제, 사교육 문제의 근원이다. 경쟁의 분산, 소모적 경쟁의 축소만이 대안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 서열화의 극복, 수도권 집중의 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학자 김종영이 서울대 10개 만들기 대안을 제시한 것이나, 한국은행이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 입학을 지역 할당으로 하자는 제안도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다. 결국은 공교육과 지방 대학의 질을 높이고 지역경제와 대학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것만이 대안일 것이다.

필자는 <시험능력주의>(창비, 2022)에서 한국의 입시 문제는 거꾸로 선 노동문제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교육’문제, 즉 입시 문제는 입시제도의 변경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사교육을 부추기는 가까운 요인은 대학의 서열화, 더욱 정교한 변별의 요청이지만, 그 상위에는 노동시장의 불안, 소수의 제한된 사람들에게 주는 특권적 보상과 그 아래 사람들에 대한 심각한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단순하게 말하면 의대나 최상위권 대학 졸업자에 대한 과도하게 높은 보상과 더불어 그 병목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이 평생 겪어야 하는 무시와 차별이 그 원인이다. 과거에 양반을 돈으로 사려 했듯이 오늘에는 의사 자격증과 명문대 졸업장을 사교육 투자로 얻으려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보상의 격차를 축소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며, 고용불안을 줄이는 것이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거시적 조건일 것이다. 그런데 이 지구적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용불안의 완전한 해소는 개별 국가의 힘을 넘어선다. 한국이란 한 국가나 정치권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성적 차별이 보상의 격차로 연결되는 고리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의대 졸업자, 변호사 자격증, 그리고 명문대 졸업장의 프리미엄을 줄이는 것이다.

복지 확충 혹은 기본소득, 그리고 노동시장의 구조적 불평등 극복이 중요하다. 물론 이것은 매우 큰 사회개혁의 과제이며, 그중 어느 하나도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없다. 역대 모든 한국 정부가 한결같이 사교육을 잡지 못했지만, 사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대체로 미국식 시장주의에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발본적 개혁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입시 문제는 결코 ‘교육’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사회개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인데 역대 모든 정부는 그런 차원에서 입시 문제를 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 사교육을 잡겠다고 하면서 실제 정책은 그 반대로 펴온 것이다. 그중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사교육비가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은 바로 윤석열 정부가 사교육을 가장 부추기는 정책, 부자 감세, 정부 축소, 노동 탄압, 반(反)복지로 일관하기 때문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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