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수천 명이 러시아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소식은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파병된 북한 병력의 정확한 규모와 임무는 아직 오리무중이지만 지금까지 보도만 본다면 그 행선지가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 지역이 유력해 보인다. 8월 초에 쿠르스크로 쳐들어간 우크라이나군은 약 82개 정착지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이 점령군은 러시아군을 넓고 깊게 격파하지 못한 채 9월에 반격을 허용하였다. 우크라이나군이 점령지에서 결정적 우세를 확보하려면 반격하는 러시아군의 후방을 깊게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무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300km 사정거리의 에이태큼스와 같은 장거리 무기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주로 소규모 전술적 차원에서 드론과 활공폭탄, M142 하이마스, 장갑차와 차량을 동원한 기동전을 펼치며 러시아군을 혼란에 빠뜨리는 정도다. 이는 진정한 진공 작전이라고 보기 어렵고, 점령 이후 무기와 군수품 보급이 곤란한 우크라이나 군이 결정적으로 유리한 우세를 확립했다고 보기에는 더더욱 곤란하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이 자국 영토로 진격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공군력을 동원하는 능력, 즉 전장방공차단(BAI)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금 러시아군은 여러 장소에서 방어 축을 생성하거나 소규모 분대 단위의 유격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반격하는 양상이다. 지금은 전쟁 발발 이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위기 상황이다. 전선이 선명하지 않은 소모전이 전개됨에 따라 양측의 사상자는 2022년 개전 이래 최고치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9월에 월 사망자가 1000명을 돌파한 러시아는 이제껏 전쟁으로 총 31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르스크 전투는 여러모로 실험적이다. 전술적 차원에서 드론과 화력을 결합한 소규모 공격 체계를 ‘전술 정찰공격 복합체(TRSC)’라고 한다. 지금은 전투원 한 명이 드론과 배회 폭탄을 동시에 운용하는 1인칭 시점의 전투(FPV)가 출현했다. 소규모 전투를 전체적으로 연결하고 전쟁의 여러 구성 요소를 다양하게 결합하는 새로운 양상의 전쟁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이 모두 이런 소규모 전투 능력을 보유함에 따라 전투 지역에서 소규모 화력전과 병행하여 GPS 교란과 같은 드론 대응 전자전(EW)도 병행된다. 양측이 항공력을 효과적으로 동원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상 화력과 기동, 전자전으로 구성된 소규모 전투에 의존하는 소모전 양상이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런 식의 전술적 차원의 공세로 러시아의 전략적 굴복을 강요한다는 것은 현실성 없는 ‘승리 구상’일 뿐이다. 이런 발상의 허황됨은 이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전을 유혹하는 것으로 이에 대해 미국과 나토는 냉담하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북한군이 전투 지역에 파병된다는 소식은 새로운 변수다. 일단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의 중심을 공격하는 주공(主攻) 전력인가, 아니면 북한제 미사일과 포탄을 러시아 군에 제공하는 정도의 조공(助攻) 전력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무리 북한의 정예 부대가 파견되었다 하더라도 전장 환경이 다른 생소한 장소에서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전투를 즉시 수행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북한은 러시아와 전술 차원이든 작전 차원이든 단 한 번도 연합 작전을 수행한 전례가 없다. 북한군이 연해주 일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할지라도 쿠르스크 전투 지역에 투입된 즉시 전투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부 외국 언론에서 제기하는 바와 같이 북한군이 ‘고기 분쇄기’로 알려진 소모적 전투에서 총알받이로 내몰리는 육탄 공격(meat assaults)에 동원될 것이라는 관측도 아직은 성급해 보인다. 실제 그런 원시적인 공격으로 북한군이 소모된다면 북한의 위신이 추락함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에 상당한 안보의 자신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승리하는 전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파병 군대는 국가의 치욕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북한 군은 러시아 군과의 연합 능력을 확보하는 목적으로 현지 전투에 적응하고 현대전을 깨우치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북한제 포탄과 미사일의 성능을 시험하고 현대전에서 교훈을 도출하는 일반 군사 활동에 임무가 국한될 수도 있다. 북한 파병군의 최종 모습은 결정된 바가 없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에 대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1TV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 체결한 전략적 파트너십 조약 제4조를 언급하면서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할지, 무엇을 결정할 지는 양국이 스스로 결정할 것”이라며 아직도 북한군의 임무와 역할이 결정된 것이 없음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와 북한 당국 간에 계속 접촉과 대화가 진행되는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