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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파병한다고 한국도? 왜?(2)

김종대 칼럼
전 국회의원
양측이 항공력을 효과적으로 동원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상 화력과 기동, 전자전으로 구성된 소규모 전투에 의존하는 소모전 양상이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런 식의 전술적 차원의 공세로 러시아의 전략적 굴복을 강요한다는 것은 현실성 없는 ‘승리 구상’일 뿐이다. 이런 발상의 허황됨은 이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전을 유혹하는 것으로 이에 대해 미국과 나토는 냉담하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북한군이 전투 지역에 파병된다는 소식은 새로운 변수다. 일단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의 중심을 공격하는 주공(主攻) 전력인가, 아니면 북한제 미사일과 포탄을 러시아 군에 제공하는 정도의 조공(助攻) 전력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무리 북한의 정예 부대가 파견되었다 하더라도 전장 환경이 다른 생소한 장소에서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전투를 즉시 수행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북한은 러시아와 전술 차원이든 작전 차원이든 단 한 번도 연합 작전을 수행한 전례가 없다. 북한군이 연해주 일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할지라도 쿠르스크 전투 지역에 투입된 즉시 전투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부 외국 언론에서 제기하는 바와 같이 북한군이 ‘고기 분쇄기’로 알려진 소모적 전투에서 총알받이로 내몰리는 육탄 공격(meat assaults)에 동원될 것이라는 관측도 아직은 성급해 보인다. 실제 그런 원시적인 공격으로 북한군이 소모된다면 북한의 위신이 추락함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에 상당한 안보의 자신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승리하는 전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파병 군대는 국가의 치욕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북한 군은 러시아 군과의 연합 능력을 확보하는 목적으로 현지 전투에 적응하고 현대전을 깨우치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북한제 포탄과 미사일의 성능을 시험하고 현대전에서 교훈을 도출하는 일반 군사 활동에 임무가 국한될 수도 있다. 북한 파병군의 최종 모습은 결정된 바가 없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에 대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1TV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 체결한 전략적 파트너십 조약 제4조를 언급하면서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할지, 무엇을 결정할 지는 양국이 스스로 결정할 것”이라며 아직도 북한군의 임무와 역할이 결정된 것이 없음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와 북한 당국 간에 계속 접촉과 대화가 진행되는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다.

러시아에 갔다는 북한군의 역할이 아직 불분명하다면 우리 정부에게도 기회는 있다. 10월 18일에 국가정보원이 북한군 파병 소식을 전격적으로 발표하기에 앞서 정부는 러시아에 특사를 급파하거나 외교라인을 동원하여 파병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원하지 않는 중국과 전략적 대화를 복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중견 국가 대한민국의 실력은 이런 외교로부터 나와야 했다. 윤석열 정부는 국방부와 외교부가 동의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국정원의 첩보만으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기정사실로 발표해 버렸다. 이렇게 되면 수교 국가인 러시아와의 외교적 해결의 여지는 사라지는 데도 말이다.

국정원이 독주하는 동안 한미연합 정보자산을 운용하는 국방부는 침묵으로 버티다가 대변인으로 하여금 “정부 발표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궁색한 설명만 내놓았다.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 국방부 정보 판단의 한계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을 검토한다”, “우크라이나에 연락 장교를 파견한다”는 등의 NSC 발표는 마치 우리가 북한군 파병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감정을 쏟아내는 비외교적이고 비논리적인 접근이었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이 “우크라이나와 협조가 된다면 북괴군 부대를 폭격, 미사일 타격을 가해서 피해가 발생하도록 하고 이 피해를 북한에 심리전으로 써먹었으면 좋겠다”는 문자를 신원식 안보실장에 보낸 사진이 보도되었다. 북한군 파병의 위험을 관리해야 하는 시점에 사실상 우리나라의 참전을 촉구하는 문자다.

유럽의 전쟁이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으로 이어지고, 이에 러시아가 반발하는 한반도의 위기로 확대된다면 세계는 3차 대전의 문턱에 바로 다가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때마침 중동에서 미국의 간섭을 거부하고 확전을 불사하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로 인해 다시 세계 전쟁의 위험이 고개를 드는 이 순간에 말이다. 네타냐후 총리와 쌍벽을 이루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신의 무모한 승리 구상을 앞세워 종전이 아닌 확전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과 나토가 전쟁에 지쳐 어떻게든 종전을 모색하는 시점에서 오히려 사태가 악화되고, 그 여파가 한반도에 미친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위기관리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유럽의 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려고만 하는 윤석열 정부는 그 답을 모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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