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통령 선거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승으로 끝났다. 친민주당 성향의 미국 언론이 보도한 것과 달리 누가 이기든 박빙승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깬 것이다. 대선과 동시에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도 공화당이 승리해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했다.
이로써 그동안 트럼프가 내뱉었던 말들을 실천할 수 있는 실탄을 갖게 되었다. 더 세고 꼼꼼해진 트럼프가 돌아온 것이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이 한반도 정세에 몰고 올 경제·안보적 폭풍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트럼프 경제리스크로 인해 벌써 한국증시는 크게 폭락했다. 경제리스크 못지 않게 우려되는 것이 바로 안보리스크이다. 트럼프 당선인과 그 측근들이 이미 한반도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정책구상들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후보는 지난 7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협상을 다시 추진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만약 북‧미 직접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윤석열 정부는 북·미 대화에 먼 산 불구경하듯이 바라만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평양에서 워싱턴을 가려면 서울을 경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들, 거래적 동맹관을 갖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 행정부가 지지율 바닥의 윤석열 정부의 말에 귀 기울일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 내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민주당, 공화당 모두 정강정책에서 ‘한반도(북한) 비핵화’ 문구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미 민주당은 2020년 정강정책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장기목표”라고 밝혔으나 2024년도 정강에는 빠져버렸다. 미 공화당도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가역적 해체(CVID)” (2020)라는 대북정책의 목표에서 ‘비핵화’를 아예 빼버렸다.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도 나타났다. 2016년부터 작년까지 ‘한반도/북한 비핵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2023년 SCM공동성명에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양측은 동맹의 압도적 힘으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는 동시에, 제재와 압박을 통해 핵 개발을 단념시키고, 대화와 외교를 추구하는 노력을 위한 공조를 지속”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년 10월 SCM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핵개발을 단념시키고 지연”시키는 것으로 ‘비핵화’가 빠졌다.
향후 북·미 핵군축 협상이 이루어진다면, 그 합의 내용은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에서 타결이 예상되던 합의안 초안이 바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시 북·미는 △한국전쟁을 상징적으로 끝내기 위한 평화선언, △한국전쟁 중 사망한 미군 유해의 추가 송환, △준대사관 성격의 연락사무소 설치, △영변 핵시설의 생산 중단 및 일부 대북 유엔제재 해제, 한국과의 공동경제계획 추진 등을 담은 합의안 초안을 마련했었다.
새로운 합의문에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두로 약속됐던 북한의 추가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 미국의 대규모 한미군사연습 중단과 같은 ‘쌍중단’과 같은 군사적 신뢰구축조치가 명문화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핵탄도미사일잠수함의 정기 방한을 약속한 「워싱턴선언」의 일부 내용을 수정할 가능성이 높다. 동남아 재배치를 위해 주한미군의 일부 감축도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북·미 직접대화가 됐든, 핵군축 협상이 됐든 관건은 북한의 태도이다. 미 대선을 닷새 앞둔 10월 31일 ‘최신형 전략무기체계’라고 자평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9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시험발사 현장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력 강화 로선을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전향적인 태도와 별개로 북한의 국제정세 판단과 입장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미 핵군축 협상에 못지 않게 한국 안보에 직격탄을 날릴 것으로 보이는 것은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과 그와 관련된 한미동맹의 재조정 가능성이다. 트럼프 후보는 한국을 머니머신(money machine, 부자)이라고 부르며 2021년 바이든 행정부가 자신과 한국이 합의한 것을 뒤집었다고 비난하며 방위비 분담금으로 매년 100억 달러(한화 14조 원)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방위비 분담금 협정은 정부간에 체결된 행정협정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뒤집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기존보다 5~6배 인상한 50억 달러를 요구했다가 한미 실무협상에서 5년간 매년 13%인상안 합의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거부한 바 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뒤 한미 간에 2020~25년 국방비증가율을 반영한 인상안에 합의하였다. 한·미는 트럼프 리스크를 감안해 2026년부터 적용되는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도 대비 8.3% 인상한 1조 5,192억 원으로 정하고, 2027~2030년 소비자 물가지수 증가율을 반영해 분담금 인상에 조기 합의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 합의를 뒤집을 경우 한미관계는 큰 파란이 일 수밖에 없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