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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산 님을 찾습니다(2)

유시민 칼럼
작가
청원은 게시판에서 44만여 명의 동의를 받았고 규정에 따라 청와대 실무자가 답변했다. 언론이 하나마나 답변이라고 비난했다. 청원이 그런 답변밖에 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는 사실은 완전히 무시했다. 시무7조’에서 조은산은 무슨 주장을 했는가? ‘민생 파탄’ ‘시장경제 퇴보’ ‘굴욕외교’로 인해 여론조사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50퍼센트 아래로 내려갔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꾸짖었다. ‘허황한 꿈’ ‘해괴한 말’ ‘미친 소리’ ‘배신자’라는 말로 조국·이해찬·김현미·노영민 등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주요 인사를 비난했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다음 일곱 가지를 요구했다. 문장이 종잡기 어려울 정도로 어수선해서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주장만 추렸다.

1)소득세·상속세·법인세·종부세 등 세금을 줄여라.
2)보편복지 정책과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버리고 기업 규제를 철폐하라.
3)한일관계를 개선하고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라.
4)인간의 욕망 추구를 억압하는 부동산 규제를 철폐하라.
5)민주와 인권만 외치는 선동꾼·아첨꾼을 배격하고 자유를 함께 추구하는 인재를 등용하라.
6)토지거래 허가지역 지정 제도와 임대차 3법을 폐지하라.
7)적폐청산을 명분으로 한 정적 처단을 중단하고 낡은 이념과 복수심을 버려라.

어떤가? 대통령과 참모들이 일일이 대답할 필요가 있는 요구였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그때는 다른 이름표를 달고 있었던 국힘당, 조‧중‧동과 재벌 기관지인 경제신문들이 주장한 바로 그 정책이었다. 그래서 재벌언론‧족벌언론‧건설사언론은 ‘시무7조’를 역사적 가치가 있는 명문인 양 추켜세웠다. 그러나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리 평가한다. 조은산의 글은 극단적인 시장주의 이데올로기를 역사극 대사 같은 문장으로 포장한 횡설수설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평가도 다를 수 있음은 인정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미워하고 민주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은 조은산을 위대한 애국자로, ‘시무7조’를 역사의 명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무슨 근거로? 책 판매 데이터가 있다.

조은산이 한 정치적 주장을 조은산 스타일의 문장으로 쓴 책으로는 시장에서 먹고 살기 어렵다. 2021년 8월 조은산은 <시무7조>(매일경제신문사)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이 대대적으로 소개하고 추천했다. 윤석열·윤희숙·서민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사들이 추천사를 썼다. 그러나 그 책은 온라인서점 예스24에서 딱 한 주 국내도서 베스트셀러 ‘TOP100’에 들었을 뿐이다. 딱 한 주였고, ‘TOP10’이 아니라 ‘TOP100’이었다. 교보문고와 알라딘의 판매실적과 독자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은산의 책은 별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도서시장에서 사라졌다. 

그렇지만 기자들의 판단은 달랐다. 얼굴도 신분도 밝히지 않은, 서른아홉 살 먹은 직장인이라고만 알려진 조은산을, 우국충정 넘치는 명문장가로 떠받들었다. 조은산이 블로그에 무언가 쓰기만 하면, 말이 되는 글이든 아니든, 최대한 선정적인 제목을 붙여 보도했다. 특정 언론만 그렇게 한 게 아니었다. 극소수 중도 성향 신문, 방송을 제외하고 모든 언론사가 똑같았다. 정말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시무7조 조은산’을 키워드로 2020년 8월 19일부터 2022년 3월 15일까지, 포털 뉴스를 시간 순으로 검색해 보시라.

‘파워 블로거 조은산’의 언어와 문장은 정확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극우 커뮤니티 댓글 수준이었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마다 막말을 섞어 썼다. 기자들은 정확하게 그 막말을 제목으로 뽑았다. 조은산이 누구를 어떤 막말로 비난했는지 몇몇 사례만 들겠다. ‘김현미 대신 붕어를 쓰고 추미애 대신 개를 써라’, ‘이낙연은 얼굴 하나 입 두 개인 기형생물’, ‘이재명은 뱀처럼 교활한 자’, ‘공수처라는 괴물’, ‘검찰개혁은 문재인 일가를 보호하려는 거대 사기극’, ‘김어준은 털 많고 탈 많은 음모론자’, ‘이재명의 입을 막을 헛소리 총량제 필요’, ‘OOO의 용모는 견적도 안 나오는 고생대 생물’.

그런데 조은산이 만인에게 막말을 한 건 아니다. 나름 품격 있는 언어를 쓴 경우도 있었다. 누구를 평할 때 그랬는지 몇몇 대표 사례를 보겠다. ‘진중권은 관우‧장비같은 인물’, ‘너무나 큰 자산 금태섭을 잃은 민주당’, ‘목줄 찬 이리들 사이의 유일한 호랑이 윤석열’, ‘가련한 경력 부풀리기에 불과한 김건희의 이력서’. 막말과 칭찬 모두 기자들이 따옴표를 쳐서 인용한 기사에서 가져왔다. 조은산이 자신의 블로그를 비공개 처리한 탓에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밝혀둔다.

조은산은 2021년 7월 23일 윤석열을 만나 한 시간 반 정도 밥을 함께 먹으며 대화했다. 열흘 정도 뒤에 그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자 언론은 ‘복붙’ 기사를 쏟아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윤석열은 달변가였으나 모든 걸 안다는 듯 말하지 않고 모든 걸 받아들일 것처럼 말했다. 철학은 확고하고 말은 직설적이었다. 그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을 조금은 이해했다”고 썼다. 윤석열이 콩 국물을 마시다 흘렸는데, 그것도 소탈한 모습이라며 호평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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