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upload/1732086300321891971.jpg)
윤석열 대통령은 8년 전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켰던 그 촛불에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2년 반 동안 도저히 참을 수 없었지만 참아왔던 시민들이다. 최근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녹취록들이 매일 쏟아지고 있다. 그 중에는 후보경선과정 왜곡과 조작에 의해 지난 대선 결과가 기만당한 것일 수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그렇게 해서 위임받은 권력을 선출된 적 없는 무자격 자연인 김건희에게 임의 양도한 상태라는 게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고 궁지에 몰리자 지난 주말 시청 일대를 가득 채운 시민집회에 명박산성을 다시 세우고, 헬멧과 방패, 삼단봉 등을 장착한 경찰들을 대거 동원해 진압모드로 전환했다. 경찰의 무력시위는 군사독재와 이명박근혜 시절 지겹도록 겪은 일이고 백남기 농민 사망처럼 반드시 불행한 결과로 귀결되었다. 국민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조건부 위임 권한으로 국민과 맞짱을 뜨겠다고 나서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정치브로커 명 아무개가 말하지 않았나. 5세 어린이에게 총을 들려놓은 형국이라고. 여당 국방위 위원과 안보실장 간 문자에서 드러났듯 위험천만한 장난으로 반 헌법적 도발을 고민할 만큼 정권위기에 처해 있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다. 지금 우리는 8년 전 위대한 촛불탄핵으로부터 얻은 다음 두 가지 교훈을 생각할 때다.
첫째, 주권자 국민의 강력하고 광범위한 연대가 필요하다. 11월 9일 집회 주최자가 세 차례나 바뀌면서 나뉘어 진행된 촛불은 이제 하나로 뭉쳐야 한다. 노동자도 시민이고, 당원도 시민이며, 매주 촛불집회를 했던 이들도 모두 시민이다. 각자 조직 정체성을 앞세우고 경계를 강조할수록 저들이 환영할 뿐이다. 무모한 진압모드로 전환하려는 저들 의도를 분쇄할 유일한 길은 우리가 하나가 되어 크고 단단한 대오를 만드는 것이다.
8년 전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개인과 모임과 조직들이 모여 하나의 촛불파도를 만들어냈던가. 비록 광장을 열고 집회참가자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을 제공하며 시민 안전을 책임지던 시장이 우리에게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쉬운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1700만이 두 달이 넘게 평화적 시위를 벌였던 학습경험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한 학습만 할 줄 아는 자들은 공익을 위해 학습하는 이들을 결코 따라올 수 없다. 세월호 학습 결과 이태원 고립전술로 대응했지만 결코 참사의 진실을 덮을 수도, 시민들 가슴 속에 각인된 기억을 지울 수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 헌법 제1조가 부여한 바 모든 권력의 발원지이자 주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이 요구되는 때다.
둘째, 지난 촛불의 좌절을 반복하지 않을 길을 모색해야 한다. 솔직히 우리는 지난 촛불탄핵 이후의 좌절로 인한 냉소와 주저에 머물러 왔다. 마치 같은 문제를 계속 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학습의욕을 잃은 아이처럼. 그래서 우리에게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필요하다. 그것은 특정한 개인의 능력과 선의에 기대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사람이 바뀌면 언제든 또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우리는 촛불탄핵 이후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소중한 학습을 했다. 대의제가 갖는 한계, 제왕적 대통령제가 갖는 위험성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지난 8년은 우리 정치체제가 성장한 국민 의식과 역량에 맞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는 과정이었다. 일상을 포기하고 열심히 촛불을 들어 위기를 해결한 후 제도정치에 ‘모두 맡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도 버거운 시민들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으며 열심히 모이고, 힘껏 외치는 이유는 단지 윤석열 정부 하나 파면하기 위함이 아니다. 모두가 사람답게 살아갈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8년 전에도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나섰지만 많이 서툴렀다. 따라서 이번에는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사회대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
87년 헌법은 이제 훌쩍 커버린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되었다. 낡으면 차도 폰도 업그레이드 하는데 5000만 삶을 담고 있는 40년 가까이 된 헌법도 손을 보는 게 이치에 맞다. 이번에는 반드시 8년 전 학습을 통해 얻은 교훈을 잊지 말고 실행해야 한다. 광장은 힘들여 촛불만 들고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책임과 권한은 제도정치권에 모두 위임하는 식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누군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것이다.
특별히 주권행사 방식에 근본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당원주권시대를 연 민주당의 변화는 사회 전체로 확장되어야 한다.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국민소환, 국민발안, 대의제를 보완하는 추첨 시민의회 등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또한 행정 권력을 제어할 수 있는 입법부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일상의 민주주의를 키우는 교육개혁도 필요하다.
새로운 사회를 위한 개헌요구와 이에 대한 정치권 응답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기꺼운 마음으로 100만 촛불을 밝힐 수 있다. 정권교체에서 멈추지 말고 세상을 바꾸는 일로 더 나아가야 8년 만에 또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하는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