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정신>(1748)을 쓴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몽테스키외(1689~1755)에 따르면, 법이 타락하는 데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국민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 다른 하나는 법 때문에 국민이 타락하는 경우다. 그런데 두 번째 타락은 치료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치료약인 법 자체 안에 독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법을 지키지 않는 첫째 경우는 가장 흔하고 우리 자신도 잘 아는 바다. 경중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법 위반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 나 역시 과속으로 과태료를 낸 적이 있다. 이 경우, 다시는 과태료나 벌금을 내지 않고자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렇게 하면 ‘준법 사회’가 된다. 이 경우, 법적 처벌은 치료약이 된다.
문제는 두 번째다. 과연 “법 때문에 국민이 타락하는 경우”란 어떤 경우일까? <청년 마르크스>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약간 혼란스럽다. 누구나 가는 산, 평화롭게 땔감(죽은 나뭇가지)을 줍던 여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법에 따라) 기마경찰에 쫓기고 폭력과 죽임까지 당한다. 전통적 공유지인 산과 숲조차 ‘토지 사유화’로 인해 더 이상 접근이 불가하게 된 것! 이제는 서민들이 숲속의 나뭇가지(땔감)조차 ‘함부로’ 줍지 못한다. 몽테스키외가 보기에 이 유형은 “치료 불가능” 케이스다. “왜냐하면 치료약인 법 자체 안에 독이 들어 있기 때문”! 그렇다면 이 법은 대체 무슨 법인가?
맨 앞 인용문은 청년 마르크스(1818~1883)가 약 180년 전 청년 헤겔파 친구들과 함께 독일 쾰른에서 <라인신문(Die Rheinische Zeitung)>을 낼 때 쓴 ‘땔감 절도법’ 비판 글(1842. 10.)에 나온다. 그는 기존 공유지에서 땔감을 줍던 가난한 여인들이 경찰 폭력에 쓰러지는 현실을 맹렬히 비판했다. 이 글로 당국의 탄압을 받아 <라인신문>까지 폐간됐다. 토지 사유화란 이토록 무섭고 폭력적이다.
법 자체가 소유권을 ‘절대적으로’ 보호하기 시작한 탓에, 마을사람들이 야산에서 죽은 나뭇가지를 모아 땔감으로 써오던 관습적 행위가 느닷없이 ‘법 위반’으로 간주된 것이다. 약 300년 전, 몽테스키외는 이 경우는 치료가 안 된다 했다. 치료약이어야 할 법 자체가 독소를 갖고 있기 때문! 여기서 독소는 ‘토지 사유화 법률’(민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천, 수만 년 전부터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공유지(커먼스) 내지 야산에 가서 죽은 나뭇가지 같은 걸 땔감으로 주웠다. 그걸로 요리도 하고 난방도 했을 것이다. 어쩌면 가장 자연스럽던 삶이 어느 날 갑자기 토지 사유화를 위한 ‘땔감 절도법’으로 인해 불법 내지 범죄로 내몰린 사태, 이는 오래 전 몽테스키외의 눈에 “치료 불가”로 판단됐다. 크게 보면, 15~18세기 잉글랜드의 악명 높은 ‘인클로저’ 운동이 독일에도 닥친 것!
여기서 나는, 한때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한 걸로 알려졌던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B.C. 470~399)를 떠올린다. 소크라테스가 글자 그대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의문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악법이라도 따라야 한다’는 말의 메시지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 이건 지배자 내지 권력자의 관점이지 피지배자 내지 평민의 관점은 아니다. 피지배자인 평민의 입장에서는, 만약 어떤 법이 악법이라면 그 악법에 순종하는 것보다 악법 자체를 없애거나 바꾸는 것이 민주주의를 고양하는 일이다. 즉, 몽테스키외가 “치료 불가”라고 느낀 그 두 번째 케이스의 치료약은 ‘악법 차제를 없애거나 바꾸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도 그런 악법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참된 통일·평화운동을 비롯한 각종 사회운동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이다. 최근의 ‘삐라-오물전쟁’을 보라! 어떤 면에서 국가(國家)는 북유럽에서 말하듯, ‘국민의 집’이다. 즉, 국가는 공유지(커먼스)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지배층 내지 기득권 세력이 공유지를 사유화하는 법 아닌가? 그러나 내가 여기서 정작 말하고 싶은 건, 몽테스키외가 말한 두 가지 법의 타락을 넘어 그 세 번째 유형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평민들이 ‘법을 충실히 지킴에도 불구하고’ 법이 타락하고 부패하는 경우다. 과연 그런 경우가 있을까? 있다! 어디에? 바로 대한민국에!
그것은 평민들이 법을 충실히 지키지만, 법률가, 특히 판·검사들이 법을 정치적,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멋대로 해석·적용하는 경우다. 몽테스키외가 살아 있다면, ‘내가 이러려고 <법의 정신> 같은 책을 썼나, 하는 자괴감’을 느낄지 모른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라! 그 사례들이야 이미 차고도 넘치지만 최근 사례 중 중요한 세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는 검찰로부터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2024.10.17.). 사실상 무죄 취지다. 그런데 단순 ‘쩐주’로서 1억 원 정도 손해를 보고 끝난 손건희 행복디자인 대표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또, 권오수 대표이사, 이종호·민태균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 및 이사, 1차 조작 선수 이정필, 2차 조작 선수 김기현 등은 모두 구속되고 재판까지 받아 (비록 솜방망이 처벌이지만) 유죄 판명됐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