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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119 민주주의'에 머물지 말자(2)

강민정 칼럼
전 국회의원
그러나 이번 친위 쿠데타 사태를 겪으면서 한편에서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위대한 주권자 시민들이 만일 12년 공교육 기간 동안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을 받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대한민국 시민성의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치러야만 했고 또 치러야 할 비용은 너무 크다.

공동체의 위기를 기꺼이 직접 나서서 해결한다는 우리의 주권자 DNA는 역사가 배태한 일종의 유전적 요소다. 우리가 선택한 것도, 노력해서 얻어낸 것도 아니다. 위대한 조상들 덕분에 물려받은 DNA인 것이다. 그것은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5.18 광주, 6월 항쟁, 촛불탄핵과 같이 우리의 주권자 DNA를 만들어낸 ‘과거’로 인해 주권자인 우리 자신도, 우리 사회 민주주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119 민주주의'에 묶여 있다. 국난위기, 민주주의 위기 순간에 출동해 급한 불을 끈 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 가는 민주주의, 그래서 치러야 할 고통의 비용은 크며, 무엇보다 다시 위기가 초래되지 않아도 될 체제를 만드는 구조적 개혁은 더디고 불안정함이 지속된다. 우리 사회, 특히 정치는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 하더니 드디어 윤석열과 같은 극단적 통치 권력까지 허용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교육계에서 종사했던 사람으로서 이쯤에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좋은 DNA를 타고난 사람이 좋은 교육을 받는다면 얼마나 멋질까,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얼마나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낼까’하는 생각. 물론 한 사회의 위기는 다양한 원인들이, 때로는 복합적으로 작용해 초래된다. 교육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마술봉이 될 수는 없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이라는 점에서 정치인 수준도, 주권자 수준도 교육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점 또한 분명한 일이다.

물론 예전에 비해 제도권 교육인 공교육의 영향력이 작아지고 있다. 이는 IT기술과 다양한 정보네트워크로 인해 지식이나 정보 접근권이 혁명적이라 할 정도로 확대된 결과다. 이번 여의도 탄핵집회에서 등장한 발랄하면서도 유쾌한 축제 같은 집회문화가 만들어진 것도 그 산물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문화에 더 친숙한 젊은이들이 보여준 감동과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학습하고 각성하는 것을 각자의 몫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제도화된 학습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이 공교육의 역할이어야 한다.

공교육은 국민세금으로 이루어진다. 공교육이야말로 각 개인의 삶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건강한 민주사회가 되는 데 복무하는 것을 분명한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육기본법 제2조는 교육목적으로 민주시민 자질 함양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전에 갇힌 교육목적이 아니라 구체적인 교육현장 안에서 살아있고 관철되는 교육목적으로 민주시민 자질 함양을 위한 공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불행하게도 우리 공교육은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그 누구도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을 받아본 사람들이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그러하다. 노년층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린이나 청년, 중장년층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스스로 민주시민이라고 믿고 있는 이들에게는 억울하고 부당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주권자 각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또한 교사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 문제와도 전혀 무관한 것이다. 지난 시기 우리 교육은 집권세력의 이익에 복무하던 교육이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교육으로 급회전했다. 더 이상 박정희, 전두환 시대와 같이 군사독재를 합리화하는 교육은 사라졌지만 이후에는 경쟁과 효율 논리와 시험능력주의에 포획된 신자유주의 교육이 우리 공교육을 지배해 왔다. 일부 교육주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큰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8년 전 촛불탄핵에도 불구하고 국민 소방수들이 불을 끈 후 돌아간 가정이나 직장, 지역사회에서 우리는 여전히 권위주의와 차별이 지배하는 일상과 마주하며 각자 싸워내야 했다. 나아가 윤석열과 같은 반 헌법적이고 몰상식한 세력에게 통치 권력을 쥐어주는 결과까지 초래했다. 이제 더 이상 ‘119 민주주의’에 머무를 수 없다. 일상의 민주주의, 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당면한 민주주의 회복과 사회구조 개선을 위한 제도개혁을 멈추지 말아야 하지만, 보다 장기적으로 민주주의 토대를 만드는 교육개혁에도 나서야 한다.

민주주의자 없이 민주주의는 지속될 수 없으며,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성숙한 민주시민인 사람은 없다. 민주시민은 학습과 훈련을 통해 길러진다. 대한민국 공교육이 민주시민인 의사, 민주시민인 판사, 민주시민인 노동자, 민주시민인 소상공인, 민주시민인 연구자를 길러내는 교육이 되도록 하자. 그래야 또 다시 장갑차 앞에 온몸으로 맞서야만 하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고, 언제 또 불이 날지 모를 위기에 비상대기하는 소방수 처지에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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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외부원고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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