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사람들이라면 가지는 '소방관'에 대한 이미지일 것이다. 소방공무원이 되기 전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고, 나의 부모님도 그랬다. 어린 시절 집 앞 마트에 발생했던 화재현장에서 일사분란하게 화재를 진압했던 소방공무원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아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었다. 대학진학을 앞두고 부모님께 소방공무원이 되기 위해 소방행정학과에 지원하겠다는 포부를 발표했을 때, 부모님께서 적잖이 놀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들에게 숭고하게 여겨지고 존경받는 직업이지만, 당신의 딸이 위험한 현장에서 희생정신을 발휘해야 한다는 사실에 걱정부터 앞서셨던 것 같다. 소방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근무하게 될 때까지도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합격 후 소방학교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으며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부모님의 걱정은 더욱 커져갔다. 나조차도 소방학교에서 공기호흡기를 매고 산을 오르는 등 체력적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이 올 때마다 ‘내가 정말 소방공무원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님께 보란 듯이 잘 해내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여성소방대원이 아닌 한 명의 소방대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훈련 받는 내내 최선을 다했다. 같이 훈련받는 남자 동기들을 보며 많은 자극을 받았다.
부단한 노력의 결과, 지금의 부모님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오히려 소방공무원이기 때문에 더 안전하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1월부터 근무하게 된 나는 비교적 화재가 많이 발생하는 시기였던 탓에 첫 출동으로 화재 현장에 가게 되었다. 큰 사이렌 소리보다도 내 심장소리가 더 큰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던 기억이 난다. 서둘러 장비를 착용하고, 잔뜩 긴장한 채로 현장에 도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을 때, 침착하게 해야 할 일을 지시해주시는 선임 소방공무원분들 덕분에 비록 현장에서 큰 보탬이 되진 못했지만, 첫 현장 활동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경험이 풍부한 선임 소방공무원분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과 든든함으로 다가오는지 느낄 수 있었다.
경험이 풍부한 선배들과 함께 출동하지만, 화재 현장은 너무나 다양하다. 매번 새로운 장소, 새로운 구조, 장애물이 있다. 올해 초 한솔홈데코 공장에 대형화재가 발생했었다. 선착대로 도착하여 진입한 현장은 말 그대로 거대한 화염에 뒤덮여 있었다. 도끼로 판넬을 부수고 내부로 진입하며 계속해서 방수를 하였지만 화염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공기용기를 교체해가며 계속해서 선임 반장님들을 도와 무거운 호스를 끌고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숨이 가빠오고 추운 날씨였지만 땀은 비오듯 흘렀다. 체력적으로 너무나 힘든 순간이었다.
뒤이어 도착한 대원들과 함께 화재는 진압되었으나 내 가슴속에는 좀처럼 뜨거운 것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현장에서의 나를 돌이켜보면, ‘한 사람의 소방대원으로서의 역할을 했는가?’하는 의문에 부끄러움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체력단련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여성소방대원으로서 배려를 받기보다는 한 사람의 소방대원으로서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소방공무원이 되기 전에 소방공무원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이 있다면 계속되는 교육훈련과 평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소방공무원에 합격만 하면 끝나는 줄만 알았는데, 계속해서 교육 훈련을 하고, 평가를 하기 때문에 훈련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처음 근무하기 시작했을 때 일을 배우기도 버거웠던 나는 이러한 일정이 빡빡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이내 꾸준한 교육훈련 덕분에 선배님들께서도 어떤 현장에서도 능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선배님들처럼 나도 교육훈련 등에 성실히 임하고 꾸준히 자기계발을 해나가며 현장경험을 쌓는다면, 언젠가는 후배에게 안전한 현장 활동을 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그런 선배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익산소방서에는 전북 최초 여성소방서장님이 계신다. 체력단련과 훈련에 매순간 성실히 임한다면 후에는 나도 최초 여성소방대원으로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동안 근무하면서 많은 현장에 나가보지 못했고 하늘아래 같은 현장은 없다지만, 나는 현장에 나가는 것이 두렵지만은 않다.
/익산소방서 팔봉119안전센터 소방사 허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