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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飛御天歌는 영원히


세종대왕이라고 저승의 꿈자리가 편할 수만은 없다. '대왕'이기에 1만원권에 자리잡고 있은 것은 좋으나 10만원권을 발행한다는 소문이 나돌 때마다 기분이 상할 수 있다. 물론 그 정도는 필부들의 짐작이니 대수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1445년 오늘 초고가 완성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경우는 기분 나쁜 정도가 아니라 억울하기까지 하다.
용비어천가는 그 2년전에 제정된 훈민정음으로 태조와 태종 그리고 이전의 4대조를 찬양한 서사시(10권 5책)와 여기에 곡을 붙인 음악(125악장)을 통칭한다. 따라서 그것은 세종의 으뜸가는 업적이지만 언제부터인지 용비어천가는 그런 제작배경보다 내용에 초점을 맞춰 대통령에 아첨하는 발언으로 비하되고 있다. 용비어천가가 주인공들을 용처럼 떠받드는 것이 오늘의 시각에서 볼 때 너무 터무니없어서인지 모른다. 그래서 노무현이 취임하기도 전에 '노비어천가'라는 버전이 나오는가 하면 대선 이전에 그를 비난하던 인사나 언론들이 앞장서 이를 부르고 있따니 세종으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용비어천가는 고려왕실로부터 대권을 빼앗고 왕족들을 수장시킨 이성계, 그 이성계와 맞서 형제를 죽인 이방원을 미화했지만 이들은 세종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이니 그가 지난날의 적에게 꼬리를 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요즘의 용비어천가는 용이 난다기보다는 싸구려 소쿠리 비행기에 태운다는 말이 걸맞다. 소쿠리 비행기건 용이건 함부로 타면 위험한 것은 비슷하나 그 점에서도 현대판 용비어천가가 오리지널보다 못하다.
오리지널에는 후세의 왕들이 조심해야 할 일을 열거하며 "...이 뜻을 잊지 마르쇼셔"라는 '물망장'이 있다. 그러나 소쿠리 비행기의 물망장은 대통령이 알아서 달아야 한다.
2003년 3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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