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8년 오늘 아메리카에 도착한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최고의 땅부자다. 지구의 두 반구 가운데 하나에 그의 이름이 박혀 있따. '아메리카'. 그보다 6년 전에 그 땅을 '발견'한 콜럼버스로서는 분통터질 일이다.
발견했다는 것은 주웠다는 말이나 그 땅덩어리는 남의 이름으로 등기된 채 그의 이름은 그 안의 쿤 동네 작은 동네에나 붙어 있으니 배주고 속 빌려 먹은 격이다. 그와 콜럼버스를 배출하고도 그 곳서 얻은 게 없는 이탈리아도 심사가 편할 리 없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그 곳을 인도로만 알아 '아메리카'니 '신대륙'이니 하는 말은 듣지도 못한 채 1506년 죽었으니 불행중 다행이었다.
얼핏 해적 같은 콜럼버스와 달리 아메리고는 상인이면서도 나름대로 학구적인 열정도 있어 그 땅을 차지한 셈이다. 피렌체에서 메디치가의 공증인 아들로 태어나 메디치가의 무역일을 하던 그는 콜럼버스의 역사적 항해가 있기 1년전인 1491년 스페인(세빌리아)의 메디치가 상관에서 일하게 된다. 그 뒤 메디치가에서 독립해 스스로 장사를 하다 97년부터 몇 차례 신대륙 일대를 탐험한 끝에 1503년 그것이 인도가 아닌 신대륙이라는 것을 발표한다. 그래서 땅을 차지했으나 마음 고생이 없지는 않았다. 시인 메어슨 같은 지성인들이 "한낱 피클 장사가 콜럼버스를 몰아 내고 신대륙을 차지했다"고 비난한 것도 그렇다.
1992년에 맞춰 대륙 발견 500주년 기념식이 요란했을 때도 지하에서 꿈자리가 뒤숭숭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보다 500년전에 이 대륙을 발견한 바이킹들을 떠올리면 억울할 것은 없다. 살던 땅덩이가 남에게 '발견'된 바람에 갑작스레 '인도 사람'(인디언)이 돼서 노예로 팔리거나 멸종된 원주민들을 떠올려도 그렇다.
2002년 3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