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단 한번의 실수



엄윤상 <법무법인드림 대표 변호사>



야속하다. 판사가 내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 같다. 무리도 아니다. 내가 보아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주장 같다. 그래도 그것이 사실인데, 어쩌겠는가. 끝까지 주장하는 수밖에.





정말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학창시절 둘도 없는 친구였다. 반가운 마음에 퇴근 하자마자 만나 식사를 겸해서 막걸리 몇 잔을 함께 마셨다. 서로가 살아온 날들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취하는 지도 몰랐다. 친구는 할 이야기 많아 보였다. 친구는 술에 많이 취했다.



그렇게 반가운 만남을 더 이어가기 위하여 친구와 함께 집 근처로 이동해서 한 잔을 더 마시기로 했다. 그 식당에서 집까지는 1킬로미터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별로 취한 것 같지도 않고 짧은 이동거리에 별일 있겠냐며 운전대를 잡았다. 그것이 악몽의 시작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요즘 회사에서는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되면 면직까지 될 수 있게 사규가 바뀌었으니 음주운전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귀가 닳도록 교육하고 있었다. 회사에 20여 년을 다니면서 한 번도 음주운전을 한 적이 없었다. 회사로고가 새겨진 경차를 운전하며 영업을 다니는 관계로 만약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라도 나면 회사 이미지에도 치명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을 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사정이 있다. 1급 장애를 가진 딸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오래도록 회사에 다녀야 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중증장애가 있는 딸을 돌본단 말인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설마 했다. 절대 음주운전을 해서는 안 되는 절박한 사정이 있는데도 운전대를 잡았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친구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푼다고 오버한 것 같다.



친구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음주운전 단속 현장이 나타났다. 그 때부터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모든 합리적인 생각도, 판단도 정지되었다. 벗어나야 한다. 이 사실이 발각되면 회사에서 해고될 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딸은 누가 돌본단 말인가. 20여 년을 회사밖에 모르고  살아온 내가 회사에서 잘리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불미스러운 일로 경찰 신세를 져본 적 없던 내가 이런 일로 걸리면 회사 사람들이 얼마나 손가락질 할 것인가. 이미 정신을 놓고 있었다.



지체 없이 중앙선을 넘어 유턴했다. 빨리 벗어나고 싶다. 빨리 도망가고 싶다. 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다. 음주 단속을 피해 도주하는 차량을 단속하는 경찰관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 경찰관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재빨리 그 현장을 벗어나서 골목으로 숨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던가. 제 정신을 차리고 후회가 몰려오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큰일 났단다. 내가 음주를 단속하는 경찰을 치고 도망갔다는데, 경찰이 찾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경찰이 내가 운전한 차량의 로고를 보고 회사에 전화했고, 피해 경찰은 내 차량에 살짝 옷깃이 스치면서 뒤로 넘어져서 약간의 찰과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건 내가 원하는 상황이 아니다. 빨리 자수해야 한다. 바로 경찰서로 찾아갔다. 그리고 사실대로 이야기 했다. 음주운전 단속을 피해서 도망가기는 했지만, 반대 차선에서 단속하던 경찰관을 보지 못했고 친 지도 몰랐다고. 음주수치 측정도 했다. 면허정지 수준의 수치가 나왔다.



그리고 1년 동안 재판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죄를 인정하면서도 여러 가지 정상을 참작해서 법정 최저형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제 곧 항소심 판결이 선고될 것이다. 회사에서는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내가 개정된 사규를 적용하여 면직되는 첫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 후회한들 어쩌겠는가. 내가 저지른 일인 것을. 단 한 번의 실수로 많은 것을 잃고 또 많은 교훈을 얻고 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