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 <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이렇게까지 갈등이 커질 줄은 몰랐다. 시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우리 땅 여덟 필지 중 세 필지는 너그들 것잉께 걱정하지 말그라’라고 시어머니와 당신의 다섯 자식들 앞에서 내게 줄곧 말씀하셨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시아버지는 당신이 하신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세 필지를 당신의 장손인 내 아들에게 증여하기로 했다.
그러자 사단이 났다. 시부모와 함께 살던 시동생이 증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시동생은 이미 그 땅에 공장설립허가를 받아놓았다. 시아버지는 증여를 약속한 땅인지 모르고 시동생이 들이미는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시아버지는 올해 치매판정을 받으셨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등진지 벌써 4년이 넘었다. 남편은 유일한 재산이다시피 한 빵집을 남기고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도 남편은 갑자기 쓰러진 바 있다. 그때는 일찍 발견되어서 살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남편 곁에 붙어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남편과 함께 빵집을 운영했다. 남편은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남편과는 30년 전에 미용 기술을 배우며 만났다. 성실하고 내성적이었던 남편은 수줍게 고백했고 그의 성실성에 한 평생을 맡겨도 되겠다는 결심으로 결혼까지 했다. 결혼 후, 남편은 성실했지만, 돈 버는 재주는 없었다. 여러 사업에 손을 댔지만 손해만 봤다. 그럴 때마다 시댁과 친정 신세를 져야했다.
거듭된 사업실패로 자신감을 잃은 남편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사귀기 시작할 때부터 우려 되었던 부분이다. 그때도 남편은 내가 다른 남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조차 싫어했다. 그렇다고 폭행을 하거나 욕설을 하지는 않았다. 표정으로 또는 조용한 말로 싫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 나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렇게 남편의 우물 속에서 26년을 살았다. 남편과 자식들만 바라보며 살았다.
남편이 갑자기 떠난 후, 이제 집착하는 사람도 없으니 하고 싶었으나 가슴에만 묻어두고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줄 알았다. 학창시절 동창들도 만나고.....여행도 다니고.....산에도 오르고.....술에도 취해보고.....노래방 가서 노래도 맘껏 불러보고.....외박도 해보고.....
그러나 생각뿐. 남편이 정해놓은 틀 밖의 세상은 두려움이다. 26년 동안 그 틀은 감옥이자 방패막이였으며 안락한 보금자리였다. 그 틀을 깨고 나갈 수가 없었다. 스스로 2년을 더 그 틀 속에서 묻혀 살았다. 무기력했다. 내 삶을 끊임없이 감독하는 남편이 있을 때보다 더 무기력하다. 남편을 따라갈까.....
빵을 사러온 누군가와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고등학교 동창임을 서로 알았다. 곧 동창 모임이 있으니 같이 한 번 보잔다. 용기를 내어 모임에 참석하고 그렇게 남편이 만들어놓은 틀, 그 밖으로 한 발 내디뎠다.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술도 마시고 노래방에서 악을 쓰며 노래도 부르고 외박도 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동호회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지난 2년은 천국이 따로 없다.
시동생은 법 운운하며 땅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고 닦달한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들도 시동생 편이다.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만이 시동생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이른다. 그러나 말을 들을 시동생이 아니다. 남편이 만들어 놓은 장막을 걷고 나온 지난 2년 동안 세상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그 땅은 원래 내 것이 아니다. 그 땅이 남편처럼 시댁의 틀 속에 나를 가둘 것 같다. 평화와 자유를 택했다. 다 내주었다. 작은 아버지와 잠시 불편했던 아들이 내 등을 토닥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