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균은 윤석열을 ‘권총을 들고 있는 다섯 살짜리 꼬마’, ‘장님 무사’에 비유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문장가라고 해도 윤석열의 위험성을 이보다 적확하게 짚어내는 표현을 찾아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대한민국과 세계 시민들은 12월 3일 밤부터 열하루 동안 권총 든 다섯 살 꼬마가 벌이는 끔찍한 광란극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지켜봤습니다. 12월 14일 저녁,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함으로써 한 미치광이의 칼춤을 일단 멈춰 세웠습니다. 시민의 포위와 응원 속에서 국회가 그로부터 흉기를 빼앗는 데 겨우 성공했습니다.
그때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은 순식간에 안도와 성취의 함성으로 뒤덮였습니다. 경쾌한 케이 팝의 선율에 맞춰 휘황찬란한 응원봉이 물결쳤습니다. 광장의 주역은 어느덧 10대와 20대의 발랄한 남녀 청춘들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60대 중반인 저도 국회의사당 앞 길거리에서 역사적 순간을 함께했습니다. 운동가요와 디지털 촛불 정도밖에 모르는 저에겐 매우 충격적이고 경이로운 장면이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전후 지식인 중 한 사람인 가토 슈이치(1919~2008년)는, 일본의 사회운동이 내리막 길을 걷던 1970년대에 ‘노학 공투’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노학 공투라고 하면, 보통 노동자와 학생의 공동투쟁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한 노학 공투는 노인과 학생의 공투입니다. 밥벌이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노인과 학생이 힘을 합쳐, 꺼져가는 일본의 사회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아이디어입니다. 그의 꿈은 일본에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윤석열의 12.3 내란 사태에 저항한 한국의 광장은 가토 슈이치의 꿈이 이웃나라 한국에서 이루어진 무대였습니다. 독재와 맞서 싸운 경험이 있는 노인네들과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에 살길 바라는 젊은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습니다. 서로 타박하던 노인네들과 젊은이들이 “너희들이 나와줘서 정말 고맙다”, “아닙니다. 어르신들의 희생과 노력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격려했습니다. 저는 윤석열 내란 사태가 한국 사회에 준 가장 큰 선물이 있다면, 바로 세대 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인네들은 젊은이들이 자신만 아는 개념 없는 개인주의자가 아님을 알았고, 젊은이들은 노인네들이 민주화 이력만 내세우는 욕심쟁이 기득권세력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12.3 내란 사태는 한국 사회에 ‘의외의 선물’도 가져다줬지만, 꼭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숱한 과제도 남겼습니다. 일일이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과제가 많지만 긴급하고 중요한 것 세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우선, 검찰과 사법 개혁입니다.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킨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가장 마지막에 부닥치는 곳이 20대 대선 결과에 대한 윤석열의 수용 태도입니다. 그는 불과 0.73% 차이로 승리했으면서도 마치 ‘100% 승리자’인 양 행동했습니다.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대선의 경쟁자였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감옥으로 보내는 데만 혈안이었습니다. 그가 비상계엄령 발동의 이유로 열거한 민주당의 ‘탄핵 남발’, ‘입법 농단’, ‘예산 농단’은 모두 어불성설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들은 계엄 발동의 이유가 아니라 야당 적대 정책의 산물입니다. 더욱이 야당은 헌법의 틀, 법률의 틀 안에서 행동했지만, 윤석열은 헌법을 어기며 야당과 국회를 군홧발로 짓밟으려고 했습니다.
검찰과 법원은 내란까지 자행한 윤석열을 철저하게 뒷받침한 친위대였다고 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검찰은 윤석열 일당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이재명·조국 등 윤석열 반대 세력에게는 한없이 가혹했습니다. 기소권을 선택적으로 사용하며 윤석열을 떠받쳐 줬습니다. 법원도 ‘윤석열 검찰’이 자의적으로 기소한 것을 그대로 추인하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바이든-날리면’의 <문화방송> 1심 유죄 판결과 대장동 50억 클럽의 곽상도 전 의원 무죄 판결은 지울 수 없는 법원의 대표적인 부역행위입니다. 국회의 탄핵으로 윤석열의 힘이 빠지자, 검찰이 돌연 승냥이처럼 표변해 그를 사냥하러 나섰습니다. 법원도 내란 사태가 터질 땐 잠잠하더니 체포 명단에 판사 이름이 나오자, 성을 내기 시작했습니다.이제 국민은 속지 않습니다.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 국민의 뜻을 무시한 채 시류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걸 그냥 바라만 보고 있지 않을 겁니다. 이참에 검찰과 법원을 ‘시민의 통제’ 아래 두는 방향으로 꼭 뜯어고쳐야 합니다.
둘째는 언론 개혁입니다. 대선 때 언론이 후보 검증을 철저하게 했다면 과연 윤석열이 대통령이 됐을지 심히 의문입니다. 윤석열의 등장과 함께 침이 마르도록 그를 칭송하는 보도를 생산했던 조·중·동 등 친윤 언론은 탄핵 사태를 계기로 안면을 싹 바꾸고 있습니다. ‘나도 비판했다’라는 면책 알리바이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동안 그들이 해온 편파, 왜곡 보도에 대해서는 한마디 반성도 없이 말입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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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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