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윤석열 정부는 ‘한 몸으로 두 명의 주군을 모실 수는 없다’는 듯 트럼프를 철저히 무시해 왔다. 미국 대선 기간 중 공화당 후보였던 트럼프 측과도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듯이 트럼프 캠프를 홀대했다. 또 트럼프 캠프를 지원하는 싱크 탱크를 띄엄띄엄 봤다. 도날드 트럼프 주니어는 2024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4월에는 기업의 초청으로 재계 인사들과 만남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8월에는 서울에서 “한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Korea Great Again)”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열린 한미 차세대 연합 컨퍼런스 '빌드업 코리아 2024'에 참석했다. 4월이면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직후였다. 3월 4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그의 출마자격 유지를 결정했고, 5일에는 경선에 남아 있던 유일한 경쟁자 니키 헤일리 후보가 후보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8월이면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공식적으로 확정된 직후였다. 그러나 트럼프 주니어는 윤석열 정부 관계자와 전혀 만날 수 없었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을 진정한 동맹국으로 인식했다면 바이든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선에서 그의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한 트럼프 후보와도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을 했어야 할 시점이었다. 그러나 이 중요한 시기에 트럼프 캠프의 실세로 알려진 트럼프 주니어가 한국을 두 번이나 방문했어도 ‘윤 정부’는 그를 문전박대했던 것이다.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에야 그쪽과 연이 있다는 기업 인사나 목사를 통해 줄을 대보려 하지만 이제는 ‘윤 정부’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다.

미국을 방문했던 김홍균 차관조차 아예 트럼프 측과는 회동 자체를 포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22일(현지시간)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특파원들에게 “미국 대통령 선거 이전부터 우리가 트럼프 측과 계속 소통해 왔고 이번의 국내 상황에 대해서도 적절하게 다 설명했다”고 하면서도 구체적 근거를 대지 못했다. 특히 “이번 방문에서 특별히 트럼프 당선인 측 인사를 만날 계획은 아직 없다”고 차기 미국 정부와는 회동 계획조차 잡지 못하는 상황임을 인정했다.

이런 정도로 ‘디스’를 당하고 있는 상황은 일본과도 대비가 된다. 일본 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선 경쟁에 뛰어든 이후부터 그의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접촉면을 넓혀 왔다. 특히 지난 4월에는 일본 집권 자민당의 실력자인 아소 다로 부총재가 미국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독대’를 하며,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기도 했다. 트럼프 캠프를 위해 정책을 준비하고 있던 미국우선주의연구소 조사단이 6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아키바 다케오 국가안보국장을 비롯해서 방위성과 외무성 차관 등이 환대했다. 트럼프 1기 국방부 차관과 제대군인부 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윌키 미국우선주의연구소 명예 펠로우가 9월 방일했을 때는 가미카와 요코 외상뿐 아니라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과도 회담을 했다. (트럼프 캠프의 싱크탱크에 대해서는 서재정, 「트럼프가 돌아온다, 북미 정상회담도 돌아오나?」 참조)

이런 노력의 결과 12월 15일 아베 전 총리의 부인인 아베 아키에는 트럼프 부부와 플로리다 자택에서 만찬을 했다. 이 만찬 후 트럼프 측은 1월 중순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의 만남을 제안했다. 당초 취임식 전 이시바 총리와의 만남을 고사해왔던 입장을 바꾼 것이다.

김홍균 차관은 그 일주일 후 미국을 방문했지만 트럼프 측과 만날 계획도 잡지 못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트럼프 당선인을 만났다고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기다리던 소식은 전해주지 못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트럼프 당선인은 ‘뒤끝이 있는 남자’다. 정적은 철저하게 응징하고 충성파는 제대로 챙겨주는 사람이다. 지난 4년간 트럼프 제1의 공적이었던 바이든 대통령에게만 충성을 바치며 트럼프 측을 외면했던 윤석열, 트럼프 대통령과 제대로 된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겠는가.<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