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 혹은 덕담을 주고받으며 새해를 맞이한다. 복을 많이 받으라는 말에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기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런 인사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다. 즉 행복은 그야말로 최종적인 삶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윤석열은 내란 실패 후 발표한 12월 14일의 대국민 담화에서 “이제, 고되지만 행복했고 힘들었지만 보람찼던 그 여정을, 잠시 멈추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모름지기 “나는 대통령 놀이가 정말 즐겁고 행복했어요”라는 말 같지도 않은 말에 국민들은 엄청난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만이 아니라 그의 최측근인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도 사퇴하면서 그와 비슷한 말을 주절거렸다. 내란 사태 여파로 탄핵 위기에 몰리자 12월 8일에 자진사퇴한 이상민은 부처 내부망에 올린 이임사에서 “모든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윤석열은 대통령 놀이 덕분에 행복했을지 몰라도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그가 대통령이었기에 끔찍한 불행을 강요 당해야만 했다. 이상민은 모든 순간이 행복했을지 몰라도 그로 인해 행정안전부의 공무원들이나 국민들은 불행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떠오른다.
인류가 행복을 인생의 최고 목적으로 꼽고 행복추구권을 보편적 권리로 인정해 온 것은 누군가의 행복이 타인들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믿어서다. 다시 말하면 행복은 본질적으로 친사회적이어서 나의 행복은 타인의 행복에 도움이 되지 그 반대일 수 없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윤석열과 이상민은 자신들이 행복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윤석열과 이상민이 자리에서 쫓겨나며 행복 운운한 것은 그들이 쾌락주의적 행복론을 믿고 있어서다. 쾌락주의 행복론이란 쾌락의 증가와 고통의 회피를 행복으로 보는 행복론이다. 한마디로 쾌락이 곧 행복이라는 주장이다.
쾌락주의적 행복론과 금욕주의 행복론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양대 행복론이었다. 종교가 우세했던 시기, 중세봉건제 시기까지는 쾌락을 금기시하는 금욕주의 행복론이 주류 행복론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 이후부터는 금욕주의 행복론은 변방으로 물러나고 쾌락주의 행복론이 주류 행복론으로 부상했다. 그것은 쾌락주의 행복론이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계급인 자본가계급의 이윤추구 욕망과 잘 어울리는 행복론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쾌락은 소비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음식을 통해 쾌락을 느끼고 싶으면 외식을 하거나 식료품을 구매해야 하고 영화를 통해 쾌락을 느끼고 싶으면 극장에 가거나 OTT 이용권 등을 구매해야 한다. 쾌락주의 행복론이 유행하면 할수록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은 쾌락주의 행복론과 자본주의 제도가 찰떡궁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쾌락주의 행복론이 제안하는 행복 사회의 비결은 너무나 간단하다. 모두가 자기만의 쾌락을 열심히 추구하면 된다! 쾌락주의 행복론의 행복 비법은 한때 코카콜라 회사가 전개했던 ‘오픈 해피니스(Open Happiness)’ 캠페인에서 명쾌하게 드러난다. 코카콜라 회사는 그들의 웹사이트에서 행복을 쟁취하는 요령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고 있다.
“진정한 행복의 탐구는 실제로는 탐구라고 할 것도 없다. 그것은 결정이요 선택이다. 그러니 한순간도 더 기다릴 것이 없다. 얼음처럼 차가운 코카콜라의 뚜껑을 따고서 행복을 선택하라!” (마이크 비킹, 『그들은 왜 더 행복할까』, 2018, 마일스톤, 58쪽)
“행복이 별 거냐? 코카콜라 마실 때의 그 짜릿한 쾌감이 바로 행복이야! 그러니 괜히 행복이 뭔지 탐구하지 말고 코카콜라나 사서 마셔”라는 쾌락주의 행복론의 조언을 따르면 과연 행복해질까?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참고로 자본에 충실한 미국 심리학은 쾌락주의 행복론을 열심히 설파하는 일등 공신 중의 하나이고 한때 한국에서 유행했던 소확행 열풍 역시 일종의 쾌락주의적 행복론이라고 할 수 있다.) 쾌락주의적 행복론을 신봉하는 윤석열과 이상민은 대통령과 장관 자리를 사유화하면서 마음껏 쾌락을 추구했고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니 자리에서 쫓겨나면서 “나는 정말 행복했노라”고 주절거렸던 것이다.
쾌락주의 행복론은 가짜 행복론이다. 따라서 그것을 믿는 사람이 누리는 행복은 참된 행복이 아닌 가짜 행복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행복이 아닌 단순한 쾌락이나 쾌감일 뿐이다. 쾌락주의적 행복론은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그것이 쾌락의 질을 따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쾌락이나 쾌감을 곧 행복으로 이해하는 쾌락주의 행복론에 의하면 윤석열과 이상민은 열심히 행복을 추구한 사람들이다. 윤석열은 국가의 최고권력을 악용해 정적과 국민들을 탄압하고 주변인들을 학대하면서 짜릿한 쾌감을 느꼈을 테니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상민 역시 윤석열에게 충성을 바치고 그 대가로 떡고물과 귀여움을 받으면서 쾌락을 느꼈을 테니 자신이 행복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내란 시도는 자신의 행복을 완성하기 위해 단행한 거사라고 할 수 있다. 비상계엄을 선포해 자신을 반대했던 사람들을 다 잡아들여 고문하고 처단하는 것이 그에게는 엄청난 쾌락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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