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주의 행복론은 가짜 행복론이다. 따라서 그것을 믿는 사람이 누리는 행복은 참된 행복이 아닌 가짜 행복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행복이 아닌 단순한 쾌락이나 쾌감일 뿐이다. 쾌락주의적 행복론은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그것이 쾌락의 질을 따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쾌락이나 쾌감을 곧 행복으로 이해하는 쾌락주의 행복론에 의하면 윤석열과 이상민은 열심히 행복을 추구한 사람들이다. 윤석열은 국가의 최고권력을 악용해 정적과 국민들을 탄압하고 주변인들을 학대하면서 짜릿한 쾌감을 느꼈을 테니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상민 역시 윤석열에게 충성을 바치고 그 대가로 떡고물과 귀여움을 받으면서 쾌락을 느꼈을 테니 자신이 행복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내란 시도는 자신의 행복을 완성하기 위해 단행한 거사라고 할 수 있다. 비상계엄을 선포해 자신을 반대했던 사람들을 다 잡아들여 고문하고 처단하는 것이 그에게는 엄청난 쾌락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쾌락주의 행복론을 믿는 것은 사회에 그다지 큰 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반사회적인 힘 센 자가 쾌락주의 행복론을 믿는다면 필연적으로 타인들과 공동체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게 된다. 쾌락주의적 행복론에 의하면 윤석열 같은 인간들은 타인을 괴롭히고 학대하면서 살아갈 때 행복할 것이고, 연쇄살인범은 타인들을 살해하면서 살아갈 때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쾌락이냐를 따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쾌락주의적 행복론은 가짜 행복론인 동시에 반사회적인 행복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철학자 임정환은 『행복으로 보는 서양철학』에서 ‘만약 쾌락이 곧 행복이라면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동물이 가장 행복한 존재라는 불합리한 결론’(임정환, 『행복으로 보는 서양철학』, 2017, 씨아이알, 99쪽)에 도달한다고 말했다. 쾌락주의 행복론이 옳다면 동물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쾌락주의 행복론은 줄곧 ‘돼지의 철학’, ‘돼지의 행복론’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행복은 건전한 삶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생활에서 느끼는 보람과 만족이다. (행복에 대해서는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김태형, 2023, 갈매나무 참고.) 건전한 삶의 목적이란 공동체에 기여하는 삶의 목적을 의미한다. 윤석열은 자신의 병적인 심리로 인해 끊임없이 힘, 권력을 추구했다. 즉 그는 자신의 사적 욕망이나 이익에 기초한 삶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왔다. 이런 목적은 불건전한, 반사회적인 삶의 목적이다. 반면에 누군가가 공동체에 기여하기 위해 훌륭한 작가가 되려는 삶의 목적을 세웠다면, 그것은 건전한 삶의 목적이다. 행복은 건전한 삶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갈 때에만 누릴 수 있다.
보람은 사람이 공동체에 기여하는 활동 혹은 생활을 할 때 체험하는 대표적인 감정이다. 사람은 공동체에 기여하면서 살아갈 때 혹은 자신이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다고 느낄 때 보람이라는 감정을 체험한다. 보람은 행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감정이다. 즉 보람이 없다면 아무리 쾌감을 많이 느끼더라도 행복해질 수 없다. 건전한 삶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보람을 느끼게 되어 행복해질 수 있다. 반면에 불건전한 삶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단지 쾌락만을 느낄 수 있을 뿐 보람은 맛보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쾌락주의적 행복론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에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이완용 같은 매국노들이다. 매국노들은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호의호식하며 마음껏 쾌락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된 행복론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에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안중근 의사 같은 독립운동가들이다. 그들은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았기에 가난하게 살았고 투옥, 고문, 살해와 같은 고통과 위험을 한평생 감수해야만 했다. 한마디로 독립운동가들은 쾌락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민족해방이라는 건전한 삶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했기에 동물적인 삶을 살았던 매국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가 없고, 누릴 수가 없었던 보람을 만끽하며 살았다. 즉 독립운동가들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윤석열 일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많은 국민이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가 맨몸으로 계엄군을 막아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국민이 내란을 진압하기 위해 거리로 나와 싸우고 있다. 행복론의 견지에서 볼 때, 내란 세력과 국민 간의 싸움은 쾌락주의적 행복론을 믿는 이기적이고 동물적인 인간들과 참된 행복론을 믿는 인간다운 인간들 간의 결전이다. 참된 행복은 타인들과 공동체에 불행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선물한다. 다시 말해 참된 행복은 단지 나만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어서 그것의 추구는 행복사회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참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올해에 국민들은 반드시 내란을 진압하고 모두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모두가 행복해지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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