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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가 서부지법 난동 불렀다(1)

김태형 /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1월 19일의 서부지법 난동 사태는 한국에서 극단주의 정치세력과 추종자들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극단주의가 무엇이고, 그것을 예방하거나 근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은 단순한 학문적 과제가 아니라 한국을 파멸의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한 절박한 과제가 되었다.(극단주의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김태형, 2019, 을유문화사 참고)

21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극단주의와는 거리가 먼 나라로 치부되어 왔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을 70여 년 넘게 지배해왔던 극우세력은 극단주의의 주요한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극단주의 집단이다. 국민의힘이나 태극기부대 같은 극우세력은 일찍이 70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 내내 극단주의 집단이었다.

정부 수립 이후부터 계속 극단주의 집단이 한국을 지배해 왔음에도 한국이 극단주의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국가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비록 극단주의가 극우 지배층 내에서는 일상이고 보편이었으나 그것이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퍼지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하에서 기승을 부렸던 일베 현상에서부터 최근의 서부지법 난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극단주의는 극우 지배층의 테두리를 넘어 전사회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극단을 ‘맨 끝’, ‘길이나 일의 진행이 끝까지 미쳐 더 나아갈 데가 없는 지경’ 혹은 ‘중용을 잃고 한쪽으로 크게 치우침’으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서 극단의 의미는 ‘맨 끝’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극단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극단주의 개념과 동일시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흑인 노예제가 폐지되기 이전 시기에 이 주제를 기준으로 펼쳐지는 정치적 스펙트럼을 보면, 한쪽 끝에는 노예제 폐지론이 있고 다른쪽 끝에는 노예제 존속론이 놓이게 된다. 이 경우 노예제 폐지론은 극단주의가 된다. 이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극단을 ‘맨 끝’의 의미로 정의할 경우 올바른 것 혹은 선(善)마저 극단으로 단죄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다수의 극단주의 연구자들은 극단주의를 ‘맨 끝’이 아니라 ‘과잉’의 문제로 바라본다. 극단주의는 다음의 3가지 특징을 갖는다.

배타성 : 배타성(排他性)은 자기(혹은 자기가 속한 집단)를 제외한 나머지를 거부하거나 배척하려는 경향이다. 윤석열은 자신을 반대하는 야당과 국민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고는 내란을 통해 그들을 싹 쓸어버리려고 했다. 배타성은 합리적인 사고나 판단 없이 무조건 자신이 옳고 남은 틀리다면서 상대방을 배척한다. 배타성이 심한 극단주의자는 반대자의 절멸을 바라기 때문에 그와의 대화나 타협을 거부한다. 배타성은 필연적으로 강박적 흑백 사고 혹은 흑백 논리로 이어진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배타성을 주요 특징으로 가지고 있는 극단주의 역시 ‘나는 국가이고 나머지는 다 반국가세력이다’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기초한다.

광신(狂信) :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나 판단을 흔히 ‘이성’으로 표현하곤 한다. 광신이란 이성 혹은 이성적 사고에 기초하지 않은 맹목적 믿음이다. 한국의 극단주의 세력이 ‘중국 음모론’ ‘부정선거 음모론’ 등을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의심이나 사유 없이 맹목적으로 믿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극단주의는 흔히 광신으로 일컬어지는 비합리적 믿음, 병적인 믿음을 주요 특징으로 포함하고 있다. 광신자는 비판적인 사고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아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무조건적으로 믿는다. 즉 광신자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나아가 그것을 미친 듯이 믿는다! 이런 점에서 광신은 망상과 가까운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강요 : 만일 어떤 이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세상을 등진 채 두문불출하며 살아간다고 해보자. 그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원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얘기는 전혀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며 무조건 배척한다. 그렇지만 그는 이웃에게 자기 의견을 강요하지도 않고,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이 사람은 극단주의의 주요한 특징인 배타성과 광신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그를 극단주의자로 규정할 수는 없다. 즉 자기가 무조건 옳다고 믿으면서 타인들을 배척하지만 자신의 믿음을 타인에게 강요하지는 않고 그럴 의향도 없다면 그는 극단주의자가 아니다.
반면에 광신적인 누군가가 타인(외부세계)을 배타적으로 대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타인에게 강요한다면, 그는 극단주의자다. 결론적으로 극단주의는 광신에 사로잡혀 세상을 배타적으로 대하며 자신의 믿음을 타인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한국의 극우세력은 배타성과 광신은 물론이고 그들의 음모론적 신념, 망상적 신념을 타인들, 사회에 강요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극단주의 집단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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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외부원고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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