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 : 그렇지만 그는 이웃에게 자기 의견을 강요하지도 않고,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이 사람은 극단주의의 주요한 특징인 배타성과 광신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그를 극단주의자로 규정할 수는 없다. 즉 자기가 무조건 옳다고 믿으면서 타인들을 배척하지만 자신의 믿음을 타인에게 강요하지는 않고 그럴 의향도 없다면 그는 극단주의자가 아니다. 반면에 광신적인 누군가가 타인(외부세계)을 배타적으로 대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타인에게 강요한다면, 그는 극단주의자다. 결론적으로 극단주의는 광신에 사로잡혀 세상을 배타적으로 대하며 자신의 믿음을 타인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한국의 극우세력은 배타성과 광신은 물론이고 그들의 음모론적 신념, 망상적 신념을 타인들, 사회에 강요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극단주의 집단이다. 극단주의로 가는 첫째 원인은 안전에 대한 위협이다. 안전에 대한 위협은 다음의 두 가지를 포함한다.
첫째, ‘실재적인’ 위협. 실재적인 위협이란 정치적·경제적 권력 또는 신체적 안녕에 대한 위협을 의미한다. 외적의 침략으로 권력을 빼앗겨 식민지의 처지에 놓이는 것, 이민자의 급증으로 실업자가 되는 것, 경제 위기로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것, 인종 청소로 인해 목숨을 위협 당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둘째, ‘상징적인’ 혹은 ‘정신적인’ 위협. 상징적인 위협이란 집단의 가치 체계, 신념 체계, 세계관 등에 대한 위협을 의미한다. 급격한 도시화 혹은 자본주의화로 인해 전통적인 농촌공동체의 가치 체계, 신념 체계, 세계관 등이 무너지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정신적인 위협에는 자존감 손상, 극심한 무력감, 고독감과 고립감, 삶의 의미 상실, 정체성 상실 같은 정신에 대한 위협이 포함된다.
오늘날 극단주의의 주요 원인인 안전에 대한 위협을 심각하게 증폭시키고 있는 사회적 조건은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개인 간, 집단 간 불평등을 심화하고 갈등과 혐오를 극대화한다. 그 결과 배타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극단주의가 심해지고 그것이 다시 갈등과 혐오를 고조시킨다. 불평등과 인간관계 악화로 인해 안전을 위협(특히 생존 위협) 당하고 인간관계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극단주의에 취약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극단주의가 기승을 부릴수록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다면, 그 집단은 극단주의를 방조, 묵인하거나 심한 경우 조장하고 부추기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 어떤 집단이 극단주의를 통해 이익을 보는 것일까? 우선 윤석열 정권처럼 극단주의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반국민적 극우 정치세력이다. 다음으로 광신적인 종교 집단이다. 광신적인 종교 집단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면 신도를 구하기 힘들어져 교세가 위축될 것이므로 사회의 극단화를 반기고 나아가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돈독이 오른 사이비 종교 집단도 마찬가지다.
안타깝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극단주의를 묵인하거나 부추기는 사회적 조건이 성숙되어 있다. 한국을 70여 년 넘게 지배해오고 있는 극우세력 자체가 극단주의 집단이고, 그들이 분할 통치와 차별 정책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혐오를 끊임없이 조장하고 부추겨온 결과 극단주의 경향은 지배층의 울타리를 넘어 전사회적 범위로 널리 확산되고 있으며, 돈독이 오른 사이비 종교 집단들까지 가세하면서 한국에서의 극단주의 경향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극단주의의 근본적 원인은 안전에 대한 위협이므로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지 못한다면 극단주의를 예방하거나 퇴치할 수 없다.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기본적인 생존을 국가가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개인 간 불평등과 계급 간 불평등을 해결함으로써 화목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극단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배타성이므로 화목한 사회는 극단주의와 대척점에 있다. 즉 사회가 화목하면 화목할수록 극단주의는 발을 붙일 수 없다.
한국의 경우 극단주의를 근절하려면 국가보안법 체제, 즉 냉전 체제를 해체하고 평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배타성을 강요하는 국가보안법은 극단주의를 대표하는 악법이다. 이에 국가보안법 체제 하에서 살아온 절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대북 문제, 이념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극단주의적 입장을 갖게 되었다. 국가보안법은 극우세력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어 적대시하는 ‘배타성’, 극우적 이념이나 주장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인 ‘광신’, 전체 국민에 대한 극우적 신념과 체제의 ‘강요’ 등 극단주의의 특징들을 골고루 갖고 있는 전형적인 극단주의 악법이다. 이것은 국가보안법 체제를 해체하고 평화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발전은 물론이고 극단주의 예방과도 관련이 있는 중요한 과제임을 의미한다.
극단주의는 가혹한 처벌, 부분적인 교육개혁, 극단주의 예방 프로그램 등을 통해 예방하거나 근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극단주의의 진정한 예방과 근절은 한국 사회를 더 건강한 사회로, 더 살기 좋은 사회로 개혁하는 역사적 과업과 분리될 수 없다. 극단주의는 내란을 완전히 진압하고 사회대개혁에 성공한다면 성공적으로 퇴치할 수 있을 것이다.<끝>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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