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설 연휴 기간 소위 ‘레거시 언론’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윤석열 기소와 탄핵 심리가 아니었다. 기자들은 윤석열보다 김경수한테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그의 SNS 글과 김부겸‧임종석‧김동연‧김두관 등의 발언을 연계 보도했다. 그들의 이름을 키워드로 넣고 기사를 검색해 보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기사가 뜬다. 언제 어떤 공직을 지냈는지 잘 알려져 있으니 도지사니 총리니 비서실장이니 하는 호칭은 모두 생략한다. 그리고 편의상 기자들이 쓰는 ‘비명계’를 그들을 통칭하는 말로 사용한다.
‘비명계’ 정치인들은 민주당의 ‘일극체제’를 비판하면서 당의 통합과 포용적 리더십을 강조한다. 최근 여론조사 데이터를 근거로 들어 민심이 민주당을 떠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소위 ‘사법 리스크’를 은근히 거론하면서 자신이 이재명보다 나은 대안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견해가 논리적으로 타당하며 사실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살피지 않겠다. 그들이 민심을 모을 수 있을지, 정권교체를 원하는 시민들의 마음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여부만 가늠해 보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것 같지 않다. 헌재의 윤석열 파면 결정이 임박한 시점에서 일제히 활동을 개시한 민주당의 자칭 타칭 대선주자들은 22대 총선의 ‘반명’ 정치인들과 비슷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논리적으로 틀린 주장을 해서가 아니다. 대선에 임하는 방식이 민심의 흐름과 맞지 않아서다. 언론의 보도량은 대중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는다. 언론이 좋게 보도한다고 해서 시민들이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을 탈당해 국힘당으로 건너가거나 신당을 만들었던 정치인들은 큰 착각을 했다. 언론이 많이, 크게, 좋게 보도해주면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믿었다. 최근 활동을 개시한 민주당의 ‘비명’ 대선주자들도 같은 착각을 하고 있다. 현실은 정반대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평소 이재명과 민주당을 비방해온 언론이 띄우는 정치인을 배격한다. 언론 보도를 정치적 독극물로 여긴다. 그런 혐의를 두지 않고 보는 신문과 방송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인이 언론의 정치 보도에 현혹되면 대중의 요구를 듣지 못하게 된다. 민심의 흐름을 읽지 못할 위험이 커진다. 그런 보도의 전형을 하나 가져왔다. 독성이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윤석열 파면과 정권교체를 간절히 바라는 시민들은 이것이 정치적 독극물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그러나 민주당의 ‘비명계’ 정치인들은 이런 것을 영양제로 여기는 듯하다. 주필 양상훈은 1월 16일 칼럼에 다음과 같이 썼다. 칼럼 제목은 ‘尹·李 둘 다 없어졌으면’이었다.
“생각이 많이 치우치지 않은 분들에게서 요즘 자주 듣는 말이 ‘윤석열‧이재명 둘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민주당에 오래 몸담았던 분들 중에서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국민이 결코 적지 않다는 사실은 요즘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금 여론조사에서 정권 교체론은 60%를 넘는다. 현재 민주당에서 이 대표 외에 뚜렷한 대선 주자가 없는 만큼 이 정권 교체론의 대부분을 이 대표가 흡수해야 맞는다. 그런데 이 대표 지지율은 다른 주자들에 비해선 압도적이지만 35% 안팎에 갇혀 있다. 서울에선 20%대다. 전국적으로 40% 선이 뚫기 힘든 천장처럼 보인다. 정권이 바뀌어야 된다고 답하는 국민 중에서도 이 대표를 적극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20% 이상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유권자 숫자를 대입하면 900만 명에 육박한다. 실제 대선에선 이들 중 상당수가 어쩔 수 없이 이 대표를 찍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현재로서는 이 많은 국민들이 ‘윤, 이 둘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여론조사 결과가 정말 그런지, 데이터 해석이 논리적으로 타당한지는 따지지 않겠다. 여론조사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이 칼럼을 가져온 것은 글의 내용이 아니라 글에 나타난 의도 때문이다. 양상훈은 너무 빤히 보여서 우스울 정도로 분명하게 속내를 노출했다. 독자를 바보로 아는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그 자신이 바보다. 왜?
양상훈은 이 칼럼 원고를 1월 15일에 다듬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윤석열은 이미 없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바로 그날 새벽 경찰과 합동작전을 시작한 공수처는 한낮에 윤석열을 체포해 조사실에 데려갔다.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공수처는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발부했다. 윤석열은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공수처는 사건을 검찰 송부했고 검찰은 윤석열을 내란수괴 혐의로 기소했다. 서부지법 폭동처럼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 있었지만 윤석열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권력자 윤석열은 1월 15일에 없어졌다. 헌재의 대통령직 파면과 법원의 내란혐의 유죄선고는 불을 보듯 훤하다.
양상훈은 독자를 속이려고 했다. 칼럼의 제목이 정직하지 않았다. ‘이재명도 없어졌으면’이라고 해야 정직한 제목이다. 다시 말하지만 양상훈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윤석열은 없어졌다.<계속>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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