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그 일당이 헌법을 어기고 일으킨 군사 쿠데타로 여전히 나라가 어지럽고 백성은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 출석한 윤석열이 술 마시듯 거짓말하는 태도. 서울 서부지법에 난입하여 만행을 저지른 폭도들로 인한 충격과 분노 또한 걷잡을 수 없다.
윤석열 내란 일당을 지지하고 동조하는 일부 종교 세력은 또 어떤가. 특히 개신교 일부 극우파 세력이 윤석열 내란 세력을 지지하고 폭력 행위에 가담하는 모습은 실망을 넘어 슬픔을 던져주고 있다. 평화의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어째서 그 모양일까.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종교는 폭력을 사랑하는가. 종교는 폭력을 행사하는 세력을 지지하는가. 부처나 예수가 폭력을 사랑하던가. 부처나 예수가 폭력을 행사하는 세력을 지지한 적 있던가.
그런데, 종교와 폭력이 서로 연결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야기가 신약성서 누가복음 14, 12-24에 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사람이 자기 집에 큰 잔치를 준비하고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였다. 그러나 초대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못 간다는 핑계를 대었다. 그러자 초대한 사람은 격노하여, 다른 사람들을 모셔오게 하였지만, 잔치에 아직 빈자리가 많이 남았다. 주인은 “길거리나 울타리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누가 14,23) 내 집을 채우도록 하여라” 일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누가 14,23의 그리스어 ἀνάγκασον εἰσελθεῖν을 ‘강권하여 데려오라’ 뜻의 라틴어 compelle intrare로 잘못 번역했다. ‘말로 간절하게 권유하고 설득하라’ 번역이 가장 적절한데 말이다. ‘억지로다가 데려다가’ (공동번역 성서), ‘억지로라도 들어오게 하여’ (200주년 기념 성서) 표현도 잘 된 번역이라고 보기 어렵다. ‘강권하여 데려오라’ 제목의 설교나 동영상을 오늘도 교회나 유튜브에서 보기는 어렵지 않다. 복음 선포를 위해서라면, 어떤 종류의 폭력을 동원해도 괜찮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폭력을 이용한 복음 선포는 모조리 죄에 해당한다. 복음 선포를 더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가 폭력을 동원해도 된다는 생각이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래 가톨릭교회에서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 잘못된 생각을 가톨릭교회는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폐기하였다.
예수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고, 폭력을 정당화하지 않았다. 예수는 폭력의 가해자를 멀리하고 폭력의 희생자를 가까이했다. 예수는 폭력을 행사하는 불의한 세력에 온몸으로 저항하고 싸웠다. 그래서 나는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누가 10,29-37)를 이렇게 바꿔 말하고 싶다.
예수는 말했다. “강도 같은 윤석열 내란 세력이 대한민국 시민들을 마구 두들겨 패고 반쯤 죽여놓고 갔습니다. 마침 어떤 목사가 내란 세력에게 폭행 당해 쓰러져 죽게 된 시민들을 보고서도 치료하거나 위로하지 않은 채, 판단을 유보하고 기도만 하다가,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런데, 길 가던 이름 없는 농민들과 노동자들과 2030 여성들이 고통받는 시민들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를 치료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윤석열 내란 세력에게 폭행 당해 쓰러진 시민들에게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판단을 유보하고 기도만 하자는 목사입니까? 이름 없는 수많은 민주 시민입니까?”
군인들을 동원하여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과 그 일당에게 예수는 무어라 말할까. 간음하다 들킨 여인(요한복음 8,2-7) 단락을 또 이렇게 바꾸고 싶다.
“그때 시민들이 윤석열과 그 일당을 끌고 와서 예수 앞에 무릎 꿇리고 물었다. "예수 선생님, 이 악당들은 내란과 반란을 일으키다 붙잡혔습니다. 헌법에 따르면, 내란 수괴들을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엄하게 처벌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는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더니, 몸을 일으켜 말하였다. “윤석열의 내란 범죄보다 더 큰 죄는 대한민국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죄를 다 합쳐도, 윤석열의 내란 범죄에는 턱없이 못 미칩니다. 그러니, 여러분 가운데 죄 있는 사람이나 죄 없는 사람이나 아무나, 마음 편히, 윤석열과 그 패거리들에게 돌을 던지시오.”
그리고 나서 예수는 짱돌을 들어, 윤석열 대갈통을 마구 후려쳤다. 그렇다면 이를 예수의 폭력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내란 수괴 윤석열에게 성경을 보내며, 용기니 사랑이니 나불거리며, ‘호수에 비친 달그림자’를 따르는 김진홍 목사와 오웅진 신부에게 예수는 뭐라 말할까.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독사 새끼들아, 악마 새끼들아, 나는 너희들을 모른다. 너희들은 나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이다. 악마야 물러가라” 크게 야단치지 않을까. 윤석열 내란 세력을 지지하고 동조하는 종교인들과 폭력을 휘두른 사람들은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들은 민주 시민들에게 버림받고, 마침내 하느님께 심판받아 지옥불에 영원히 떨어질 것이다.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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