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25일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한 날이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때였다. 그 후 오늘까지 모두 9명의 인권위원장이 있었는데, 그중에 얼마 전까지 내가 꼽았던 ‘최악의 인권위원장’은 단연코 ‘현병철’이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재임 때인 2009년 7월 20일에 제5대 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된 교수 출신이다. 내가 그를 최악으로 꼽은 이유가 있다. 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되기 나흘 전인 2009년 7월 16일,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왜 당신을 인권위원장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인권위 또는 인권 현장에 대해 저는 잘 모릅니다. 차라리 모르는 게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라는 기상천외한 답변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른바 ‘인권 무자격자’로 정리되는 현병철의 답변은 당연히 시민사회와 야당의 강력한 반발을 불렀다. 실제로 그는 인권과 관련하여 그 어떤 활동도, 학자로서 그 어떤 연구 실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오히려 그런 사람을 인권위 역사상 처음으로 연임까지 시켜줬다. 그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임명된 현병철은 인권위원장으로 제대로 일했을까? 재임 중 그의 언행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특히 인권 감수성과 관련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몇 가지만 살펴봐도 충격적이다.
2010년 7월의 일이었다. 사법 연수생들과의 간담회 중 “우리 사회는 다문화 사회가 되었어요. ‘깜둥이’도 같이 살고…”라고 했다.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반인권적 망언을 ‘장관급’ 국가인권위원장이 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2010년 4월에는 재한 몽골학교를 방문했을 때 몽골 학생들 앞에서 “야만족(?)이 유럽을 200년이나 지배한 건 대단한 일이다”라는 말도 했다. 그날 행사장은 난리가 났다는 후문이다. 이런 지경이니 국가인권위 업무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연임 덕분에 가장 오래 위원장으로 재직한(2009년~2015년) 현병철은 ‘이전까지 찬란했던’ 인권위의 국제적 위상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먼저 120여 개국의 인권기구 연합체인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로부터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가 판정을 받는다. 그야말로 초유의 망신이었다. 현병철 위원장 임명 직전인 2009년 ICC ‘의장 후보국’에서 ‘등급 보류국’으로 단박에 전락한 것이니, 더 할 말이 무엇이겠나.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 발생한 ‘용산 참사’ 때에서의 대응이었다. 현병철 인권위는 용산 철거민 5명의 죽음에 대해 권력이 불편해 할 의견을 표명하는데 주저했다. 침묵하거나 면죄부를 줌으로써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인권위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현병철 위원장 재임 6년간 내내 그러했다. 국가인권위가 몰락한 시기였다고 기억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그러한 현병철을 지운다. 그를 능가하는 ‘진짜 최악’이 나타날 줄은 정말 몰랐다. 바로 ‘내란 수괴’ 윤석열이 임명한 지금의 제9대 인권위원장 안창호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중순쯤, 가까운 지인의 모친상 부고를 듣고 조문을 갔다가 국가인권위에서 근무하는 지인을 만났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그에게 농반진반 “그래도 과거 현병철 시대를 겪어봐서 견딜 만은 하시죠?”라고 말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진지했다.
“아니요. 정말 견딜 수가 없네요. 지금 돌아보면 차라리 현병철 시대가 더 나았어요. 그때는 위원장만 문제였는데 지금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그러니 견딜 수가 없네요. 지금은 인권위에 있다는 게 정말 고통스럽네요.”
그렇다. 보다보다 이런 인면수심의 집단을 일찍이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의 국가인권위 일부를 구성하는 안창호 인권위원장과 김용원, 이충상 상임위원 등을 바라보는 상식적인 국민들의 분노는 이미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특히 김용원 상임위원이 주도한 이른바 은 국가인권위의 존재 이유 자체를 흔들고 있다. 내란 수괴의 불구속 수사 등 방어권 보장 등을 권고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는 이 권고는 오로지 자신을 임명해 준 윤석열을 향한 ‘개인적인 충성심’의 발현일 뿐이다. 국가인권위 설립 목적을 벗어난 것은 물론이고, 불의한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라는 국회의 지적에 사사건건 대립하며 파열음만 일으키던 안창호 위원장과 김용원, 이충상 상임이 끝내 국가인권위를 정쟁과 이념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이다. 결국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국가인권위의 역할은 사라지고 ‘우려한 것처럼’ 내란 수괴인 윤석열을 위한 국가인권위로 전락시킨 것 아닌가. 도대체 누가 이들에게 그런 권한을 줬단 말인가.
그렇게 지난 10일 이들이 6대 4로 통과시킨 이른바 은 국가인권위 역사상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치욕으로 남게 되었다. 그날, 존중 받아야 할 국가인권위의 권고가 ‘오물통에 처박힌 것 같아’ 30년 넘게 인권운동가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나는 이 권고안을 발의한 김용원 상임을 비롯하여, 찬성표를 던진 이충상, 강정혜, 이한별, 한석훈 그리고 마지막에 찬성표를 던진 안창호 인권위원장에게 요구한다. 더 이상 국가인권위를 망가뜨리지 마라. 국가인권위의 주인은 당신들이 아니다. 우리 국민 모두의 것이다. 그러니 그만 사퇴하라. 당신들이 지켜줘야 할 해병대 채 상병과 이태원 참사 피해자 등은 외면하면서 22명의 초호화 대리인단이 변호해 주고 있는 내란 수괴 윤석열의 방어권은 절박하다는 당신들의 인식에 나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입법, 사법, 행정으로부터 독립된 국가인권위를 만들어준 국민들을 배신한 안창호 인권위원장과 ‘찬성 5인’은 위원직에서 당장 물러나라.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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