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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법' 졸속 입법경쟁 멈춰라

윤근혁 / 교육의 창 취재본부장

대전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가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을 살해한 유례 없는 흉악한 범행을 저질렀다. 교육계와 사회가 커다란 충격에 빠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만행이 벌어진 지난 10일 이후 경찰은 18일 현재, 가해 교사에 대한 제대로 된 대면조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범행 뒤 자해한 교사의 치료가 늦어지는 탓이다. 사건 이후 대전시경찰청과 대전시교육청은 범행을 저지른 교사가 ‘우울증 환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담당 의사가 발행한 진단서에 적힌 사실을 말한 것이긴 하다. 그 이후 불똥은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에게 튀었다. 상당수 언론들이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을 겨냥했다.

그러자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지난 12일, 장관-시도교육감 간담회에서 “하늘이법을 추진하겠다”고 득달같이 밝혔다. 사건 발생 이틀 뒤의 일이다. 이 장관은 “정신질환 등으로 교직 수행이 곤란한 교원에게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 직권휴직 등 필요한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하고 복직 시 정상 근무의 가능성 확인을 필수화하는 법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야 의원들은 18일 현재, 10건의 하늘이법을 발의(교육공무원법 개정안 기준)했다. 12일에 2건, 13일에 3건, 14일에 2건, 17일에 2건, 18일에 1건이었다. ‘누가 빨리 발의하나’ 경쟁 하듯 하늘이법 대표 발의에 나선 모습이다.

이 법안의 내용은 이 장관의 지난 12일 발언 내용과 비슷하다. ‘정신질환 교사 배제’가 큰 줄거리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2023년 교사노조연맹에서 교사 1만여 명을 대상으로 벌인 자체 설문조사에서 교사 4명 가운데 1명(26.59%)이 “5년 이내 정신과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업의 특성상 교사는 정신질환을 겪을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높은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건 며칠 만에 교육부장관과 일부 의원들이 정신질환을 겪는 교사 모두를 겨냥한 법안을 경쟁하듯 제안하고 발의한 것은 정말 성급한 행위다. 범행에 대한 진상도 규명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서두르는가.

게다가 기존 법령과 법규에도 ‘교직 수행이 어려운 교원 배제, 분리’ 조항이 분명히 있다. 질병휴직위원회와 질환교원심의위원회를 두어 직권 휴직과 복직 여부에 대해 심의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위원회는 그 동안 유명무실이었다. 최근 5년 사이에 단 한 차례도 해당 위원회를 열지 않은 교육청이 수두룩하다. 이미 존재하는 위원회가 왜 유명무실했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비슷한 내용을 담은 또 다른 법을 급박하게 만들려는 것은 성급한 행위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는 교사들을 전수조사해서 교직 분리 조치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울증 교사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증상을 가진 교사이지, 나쁜 교사가 아니다. 우울증이 죄가 아니라는 말이다.

“저는 우울증으로 휴직을 했습니다. 그런데 복직을 앞두고 초등학생 살해 사건이 터졌고, 교육부와 의원들의 대응을 보니 사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17일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교육특별위원장 등이 연 ‘하늘이법 입법추진 교원단체 간담회’에 참석한 한 교사는 이처럼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는 2.5% 정도로 다른 나라에 견줘 높지 않다. 하지만 숨어 있는 수치가 엄청나다. 의학계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15일부터 16일까지 전국 초중고 교사 6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초등생 살해 사건의 원인’에 대해 “질병휴직위원회 등 기존 제도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않고 학교로 책임을 떠넘기는 교육부·교육청 태도”라고 답한 비율이 77.8%(중복 응답)로 가장 높았다.

사실 정부와 정치권은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서 새로운 법을 만드는 시늉을 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 제도가 있는데도 그것을 활용하지 못한 책임을 피해 가기 위해서다. 같은 조사에서 교사들의 96.7%(중복 응답)는 ‘최근 정부와 정치권 대책’에 대해 “질병휴직위원회 등이 작동하지 않은 교육행정에 대한 책임 있는 반성과 대책이 없다”고 답했다. 또한 교사 98.3%(중복 응답)는 하늘이법’에 대해 “불이익을 염려해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기피할 수 있다”고 답했다.

다시 말하지만, 우울증은 죄가 없다. 일부 의사들은 자신의 제자를 살해한 대전 초등교사는 “우울증 환자라기보다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사상 초유로 벌어진 해괴한 한 교사의 만행을 갖고 와서 우울증 등을 일반화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진상규명이 중요한 것이다. 사이코패스를 잡는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우울증 교사를 잡는 제도를 만들면 안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교사들은 물론 학부모단체들도 ‘하늘이법 신중 추진’을 제안했다. 의학계도 비슷한 의견이다. 더불어민주당도 ‘하늘이법을 당론으로 추진하되, 신중하게 추진할 것’을 결정한 상태다. 문제는 교육부와 일부 눈치 빠른 국회의원들이다. 당장 졸속 하늘이법 법안 발의 경쟁을 멈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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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외부원고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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