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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우리주의’와 국민항쟁(1)

김태형 /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프랑스인들은 자기 나라를 프랑스 대혁명의 나라로 부르면서 자랑스러워한다.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유럽 대륙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철저한 시민혁명을 수행한, 저항정신이 투철한 민족이라는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프랑스인들도 한국인들에게는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과거의 (지배층에 의해 민란이라는 모욕적인 명칭으로 불렸던) 장구한 국민항쟁의 역사는 차치하더라도, 한국인들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에만도 줄기찬 국민항쟁으로 정권을 3~4번이나 교체한, 전무후무한 세계사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즉 한국인들은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퇴진시켰고, 1980년대에는 6월항쟁으로 군부독재를 역사의 무대 뒤로 퇴장시켰으며(80년에는 진보적인 세계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광주에서의 영웅적인 무장항쟁과 해방광주도 있었다), 2000년대 들어와서도 박근혜 정권을 탄핵했고 윤석열 정권의 탄핵을 코앞에 두고 있다. 또한 한국인들은 설사 대통령 임기를 마쳤더라도,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은 대통령은 감옥에 보냈다. 프랑스인들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8혁명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정권교체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니 단지 현대사만 비교하더라도, 대혁명의 나라라며 어깨에 힘을 주는 프랑스인들도 한국의 국민항쟁 역사를 알게 되면 혀를 내두르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자랑스러운 국민항쟁의 역사를 써온 것은 한국인들의 집단심리 혹은 민족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는 『한국인의 마음속엔 우리가 있다』라는 저서에서 한국인의 대표적인 민족심리를 ‘우리’, 인간중심, 도덕, 비종교, 낙천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중에서도 한국인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민족심리는 단연 ‘우리’다. ‘우리’는 운명공동체라는 자각에 기초한 일심동체의 집단이다. 쉬운 예를 들자면 월드컵 거리응원전에 나선 사람들의 집단, 국민항쟁에 떨쳐나선 사람들의 집단이 바로 ‘우리’라고 할 수 있다. 월드컵 거리응원전이나 국민항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공동의 목적은, 비록 일시적이고 제한적일지라도, 사람들에게 운명공동체라는 자각을 가지게 해준다. 한국인들은 이런 자각에 기초해 한마음(일심) 한 몸(동체)으로 뭉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다.

한국인들은 먼 옛날부터 개인보다는 ‘우리’를 더 중시하는 ‘우리주의’와 그것을 체화한 심리적 특성, 민족성인 ‘우리성’을 가지고 살아왔다. 이상적인 가족 혹은 화목한 가족은, 본질적으로 ‘우리’와 동일한, ‘우리’의 최소단위 혹은 원형이므로 이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이상적인 가족의 구성원들은 항상 개인보다는 가족(집단, 우리)을 우선시(‘우리주의’)하며 가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우리성’)하려고 한다. 또한 그들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하나로 뭉쳐 서로 사랑하고 위해주면서 살아간다.

윤석열 일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많은 국민들이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가 계엄군을 맨몸으로 막았다. 이 장면을 본 청년들은 크게 감동하여 두려움을 떨쳐내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국민항쟁의 주력으로 등장했다. 이런 한국인들의 국민항쟁을 지켜본 일부 미국인들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미국인들은 절대로 저렇게 못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자기의 목숨을 내걸고 맨몸으로 계엄군을 막아선 것, 계엄군에 맞서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고는 거리로 나온 것은 당연히 개인이 아닌 공동체(우리)를 더 중시할 때에만 가능한 행동이다. 만일 개인을 가장 중시한다면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므로 국가나 공동체가 위험에 처한다 하더라도 항쟁에 나서기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자본주의화 됨에 따라, 특히 신자유주의가 한국을 점령한 이후부터 한국인 특유의 ‘우리주의’는 퇴조, 약화된 반면 개인이기주의가 크게 득세하고 강화되었다. 이 때문에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평소에는 개인주의에 기초해 개인을 우선시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여전히 강한 ‘우리주의’, ‘우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뚜렷한 공동의 목표가 부각되거나 제시되면 즉시 ‘우리’가 되어 우리를 위해 헌신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국민항쟁은 개인주의에 완전히 잠식당한 것으로 평가되었던 청년들의 마음 속에도 ‘우리’가 잠재되어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한국인이 국난 극복에 강한 민족이라고 평가받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자랑스러운 국민항쟁 전통은 한국인들의 ‘우리주의’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국민항쟁 과정에서 많은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 감동시킨 것 중의 하나는 나눔 문화이다. 항쟁 참가자들을 위해 무료로 음식, 음료 등을 제공하거나 집회장소 근처의 카페나 식당 등에다 선결제를 하는 문화가 일상화되었다. 농민들의 행진로를 차단한 경찰로 인해 다소 급박하게 시작하게 된 남태령 항쟁에서는 그곳으로 배달음식을 보내주었고, 추운 날씨를 걱정하여 항쟁자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난방버스를 보내주기도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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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외부원고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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