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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우리주의’와 국민항쟁(2)

김태형 /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국민항쟁 과정에서 많은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 감동시킨 것 중의 하나는 나눔 문화이다. 항쟁 참가자들을 위해 무료로 음식, 음료 등을 제공하거나 집회장소 근처의 카페나 식당 등에다 선결제를 하는 문화가 일상화되었다. 농민들의 행진로를 차단한 경찰로 인해 다소 급박하게 시작하게 된 남태령 항쟁에서는 그곳으로 배달음식을 보내주었고, 추운 날씨를 걱정하여 항쟁자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난방버스를 보내주기도 했다.

이러한 나눔 문화는 80년의 광주항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80년 광주에서 시민들은 항쟁자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놓고 나누었다. 가게 주인들은 매대의 물건들을 무료로 제공했고, 택시 기사들은 항쟁자들을 그냥 태워주었으며, 평소에는 공동체와 무관한 삶을 살았을 어깨들조차 헌혈을 하기 위해 줄을 섰다.

나눔 문화는 가족, ‘우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통속적으로 말해 ‘우리’란 곧 화목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가족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네 것, 내 것 구분하지 않고 나누며 서로를 알뜰히 챙겨준다는 것이다. 특히 식구(食口)라는 말이 보여주듯, 가족은 한솥밥을 먹는 사이여서 항상 상대방의 밥을 챙겨준다. 한국인들은 예전부터 식사와 관련된 인사말 혹은 사교말을 애용해왔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싶으면 “제가 다음에 식사 한번 모실게요”라고 말하고, 친한 사람에게는 “조만간 밥 한번 같이 먹자”는 인사를 건넨다. 타인들을 대상으로 가족 내에서만 사용할 법한 인사말을 적용해온 것은 한국인들이 한 가족, 즉 ‘우리’가 되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꿔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진 것을 서로 공유하거나 나누어야 하고 서로를 돌봐주면서 서로의 식사까지도 챙겨줘야 한다. 이런 자연스러운 마음의 표출이 바로 국민항쟁에서의 나눔 문화다.

전통적으로 서구의 사상가들은 사람들이 모여 군중이나 집단이 형성되면 야수성, 폭력성 등을 드러낼 수 있다면서 경계했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에는 거대한 시위가 빈번하게 약탈과 방화 같은 범죄를 동반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시위대가 상점을 턴다든가 주차된 차량에 방화를 해서 큰 시위가 끝난 현장이 마치 폐허처럼 변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감정적으로 흥분하고 책임감이 분산되어 폭력 같은 일탈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국민항쟁은 이런 주장이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한국인들은 국민항쟁에 참여하면 평소보다 오히려 덜 흥분하고, 덜 폭력적으로 되는 반면 더 도덕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은 거대 집단을 이루었을 때 평소에 쌓인 개인적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폭발시키곤 하기 때문에 대규모 시위를 분노, 증오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국민항쟁을 통해 거대 집단을 이루면, ‘우리’가 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기쁨과 행복감 같은 긍정적인 감정에 젖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들은 흥이 많은 민족이다. 한국인의 ‘흥’이라는 주제를 연구한 결과들에 의하면 흥이 나는 것은 ‘우리’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에 비례한다. 다시 말해 한국인들은 ‘우리’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으면 흥이 난다는 것이다. 술자리를 통해 하나 된 듯한 느낌을 받으면 기분이 고조되어 기어이 2차, 3차를 하려고 하는 것, 좋아하는 가수(공동의 사랑의 대상은 공동의 목적과 유사하다)의 공연장에서 하나 된 느낌을 받으면 끝없이 떼창을 하며 즐거워하는 것 등은 ‘우리’가 되었을 때 체험하는 긍정적인 감정이 바로 ‘흥’임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국민항쟁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처절하고 두려운 싸움이다. 그러나 막상 국민항쟁 현장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너무나 기쁘고 흥겨워한다. 국민항쟁의 현장은 일상에서는 잊고 있었던 ‘우리’를 되찾은 곳이자 그 ‘우리’가 주인이 된 우리 세상, 해방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인들의 국민항쟁은 분노나 증오 등이 아닌 기쁨과 행복감 등이 지배하는 흥겨운 축제마당이 되곤 하는 것이다. 과거의 동학농민항쟁이 그랬고, 80년의 해방광주가 그러했으며, 오늘날의 국민항쟁이 그렇다.

한국인을 대표하는 민족심리가 ‘우리’라는 것은 한국인들이 ‘우리’가 되어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우리’가 되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뒤집어 말하자면 한국인들이 가장 싫어하거나 끔찍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가 붕괴되어 홀로 살아가는 것, 동료나 이웃들과 갈등하고 다투면서 살아가는 것임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가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화 하기 시작한 90년대부터 자살률이 세계 1위로 치솟아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한국인들을 개인으로 갈갈이 찢어놓음으로써 한국인들에게서 ‘우리’를 박탈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우리’가 되기를 열망하며 ‘우리’가 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대개혁은 그 무엇보다 ‘우리’를 복원,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즉 한국 사회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평등을 실현하고, 각자도생의 개인 간 생존경쟁과 서열경쟁을 강요하는 오징어게임을 중지함으로써 모두가 ‘우리’가 되어 화목하게 살아가는 대동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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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외부원고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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