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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극우 기독교의 뿌리, 이승만을 캔다(2)

주진오 / 역사학자·상명대 명예교수

배은희는 장로교 목사, 이승만은 감리교 장로, 이기붕은 감리교 권사였어요. 1954년 12월 기독교방송이 개국했는데,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을 높이고 교세를 신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와 천주교만의 참여로, 1951년 초부터 군종제도가 시행에 들어갔지요. 오로지 개신교에만 허용된 형목제도는 타 종교의 참여가 봉쇄되었습니다. 국가적인 장례식도 개신교 방식으로 진행되었어요. 기독교계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에도 “국군장병의 ‘위령제’를 ‘추도식’으로 개칭할 것”, “‘충영탑’이란 명칭을 ‘기념탑’으로 변경할 것”, “‘33인 합동추념식’에서 ‘분향’을 실시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49년 당시 문교부 안호상 장관은 국기배례를 거부한 학생들에 대한 퇴학 처분을 옹호했어요. 개신교 측은 배례 방식이 ‘국기의 우상화’를 조장한다면서 변경을 요구했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교회의 요구를 수용하였고, 문교장관을 기독교인으로 교체했어요. 1948년 제헌 선거일은 원래 일요일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교회는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하였고, 결국 선거일은 일요일을 피해 5월 10일로 결정된 것이었어요. 1949년 이승만 정부는 일요일과 겹친 ‘제헌절 1주년 기념식’을 월요일에 거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울러 개신교는 이승만의 물질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미국으로부터 달러화로 들어온 선교자금과 관련된 외환정책을 통해서, 그리고 귀속재산 혹은 적산의 처리ㆍ배분 과정에서 천리교 부지를 영락교회를 비롯한 개신교회들이 차지하는 혜택을 입었지요.

이승만 정부하에서 교회와 신자들은 권력자와 과도하게 일체화되었습니다. 교회는 온갖 영예를 받았고, 신자들에게도 교회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자부심의 원천이었어요. 한국 사회 내의 지배적 종교의 하나로 확고한 위상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토록 강성하던 이승만 정권이 4.19 혁명으로 붕괴위기에 직면하자, 교회는 이승만에 대한 동정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 하락과 그에 따른 신자 증가율의 하락으로 나타났어요. 독재와 부패에 대한 개신교의 공동 책임을 추궁 당했습니다.

당시 서울에는 살아있는 권력자의 동상이 남산공원에 있었어요. 25미터에 달하는 당시 세계 최대의 동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쫓겨나자, 동상은 끌어내려졌고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한국의 개신교계는 이승만의 개인 우상화 시도에 대해서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똑같은 개신교인였던 조병옥이 4대 대선에 나서자 “이 박사와 겨루는 것은 곧 하나님과 겨루는 것과 같다”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백만 기독교도는 강하고 담대한 사람 장로 이승만과 착하고 진실한 사람 권사 이기붕을 세우자“고 선거운동을 벌였어요. 개신교계는 자유당 후보 이승만과 이기붕의 당선을 독려했고 부정선거 규탄시위의 원인을 ‘하루하루 첨예화해 가는 정당 싸움의 결과’로 분석했습니다. 심지어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던 4.19혁명이 일어난 후인 4월 22일에조차, KNCC는 이승만의 “건강을 송축”했어요. 4월 혁명은 한국 기독교에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려는 불교로, 조선은 유교로, 또 대한민국은 기독교로 망한다’는 말까지 돌았어요. 당시 개신교회의 모습은 ‘푸줏간에 끌려가는 송아지 모양으로 민중의 심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교회 안팎으로 정화와 혁신의 요구가 분출되었고. 새로운 정교 관계의 윤리를 토대로 갱신, 혁신될 것이 요청되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다시 권력과 손을 잡았어요. 결국 한국 개신교가 권력과의 유착을 끊고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잃었어요. 이승만이 만들었던 반공과 친미를 통한 기독교 국가의 건설이라는 틀은, 한국 교회의 원형적 가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미동맹은 신앙만큼이나 절대적인 가치를 이루었어요. 오늘날 극우 집회에서 태극기와 함께 미국의 성조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한국 교회는 윤석열 정권 아래서 이승만 정권 당시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과오를 범했어요. 무속에 의지하는 윤석열 부부를 치하하고 축복하며 지지했습니다. 국가조찬기도회를 개최해서 격려했고, 윤석열이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열렬히 환대해 주었어요.

오늘날 전광훈-손현보로 대표되는 극우 기독교가 한국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승만을 국부로 칭송하며 기념관을 건립하고 다큐 영화제작을 후원하고 있어요. 그리고 마치 한국 사회를 이승만 시대로 회귀시키려는 시대착오적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전광훈은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했습니다. 2021년에는 “하나님 사표 내고 나랑 바꾸자”라는 등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했는데도 한국교회는 전광훈을 방치했어요. 그 결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을 키웠고, 마침내 법원 폭동 사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현재 전광훈-손현보로 과잉 대표되고 있는 한국 개신교에 대한 신뢰도는 21%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뒤늦게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이번 기회에 정리가 되지 못하면 개신교 전체의 공멸로 이어질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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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외부원고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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