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에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대규모 극우 집회가 열렸다. 날이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고 참여자의 연령·지역·성별이 다양해진 느낌이다. 단상에 오른 연사의 연설 내용에는 3·1 독립 정신을 기리는가 하면 4·19 의거 찬양, 한미동맹 강화와 남북통일 완수, 호국 국가유공자에 대한 감사 등등이 섞여 있다. 뉴라이트 근본주의 이념의 특징들이 희석된 혼합형이다. 기독교인들이 예배 형식으로 집회를 유도하지만 단상에는 불교 승려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국민의힘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헌법재판소와 선관위와 국회를 해산하겠다고 소리칠 땐 환호성이 터진다. 국회의원으로부터 반정치, 반지성의 선동이 마구 나오는 현상은 놀라울 뿐이다.
본 집회의 저편에서 인기 극우 유튜버가 주도하는 소규모 집회의 참여자 연령대는 더 낮아진다. 아이를 대동한 부모가 맨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고, 초등학교 4학년생이 연단에 올라 “종북세력은 북한이나 중국에 가서 살아라”고 소리친다. 여성 발언자, 특히 청년층이 많아진 본 집회의 연단에서는 어느새 양성평등이 달성된 것 같다. 한때 노인들이나 모이던 태극기 집회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고립되었던 극우가 어떻게 이토록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극우 집회가 장·노년층의 구린 태를 벗고 외연을 확대하는 데는 모종의 설계가 있다.
‘윤석열 탄핵 반대’와 ‘부정선거 척결’은 이들이 공유하는 전략적 구심점이다. 감옥에 있는 윤석열과 김용현이 제시한 전략 목표를 극우 세력이 내면화한 것이다. 이 집회에 한껏 고무된 내란의 수괴는 ‘감동적’이라고 화답했으며 중요 가담자인 김용현은 서신으로 “헌법재판소를 처단하자”고 선동했다. 정치적 선동과 조직적 확산, 대중 동원이라는 극우 대중운동의 틀이 제대로 잡혀가고 있다. 자신의 지위가 하락하고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느끼는 상실과 분노의 세대가 그 선동에 화답했다.
윤석열이 내란 쿠데타를 일으키고 지나간 석 달. 헌정을 수호하려는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대통령을 탄핵 소추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윤석열 이후의 새로운 나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활력이 넘치는 나라, 희망을 말하는 정치, 통합을 이루는 사회를 향한 대개혁을 외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그저 헌법재판이 어떻고 조기 대선이 어떻고 하는 지루한 정치적 논란이 지속되는 동안 높은 물가에 서민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서민의 산소호흡기가 되어야 할 추경 예산은 언제 통과될지 기약이 없다.
야 6당이 탄핵 국면에서 원탁회의를 개최하는 모양이지만 민생이나 사회개혁의 의제를 채택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협의체를 무엇 때문에 만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극우로 경도되는 시민들에게 야당은 자신들의 정권 장악에만 관심이 많은 것처럼 여겨진다. 민주주의가 외로운 사람, 불안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절박한 사람들은 민주적 질서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된다. 여기에 사회 갈등을 촉진하는 종족 사업가(ethnic entrepreneur)들이 등장하여 우리가 겪는 고통의 원인을 중국이나 북한, 야당 때문이라고 속삭인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민주주의가 무력화되는 만큼 전체주의는 힘을 얻는다. 극우 세력은 민주주의의 허약한 지점을 공략하면서 성장한다. 극우의 광장에서 힘을 부여하는 사고의 특징을 살펴보자. 먼저 기독교식 재림사상이다. 너절하고 번거로운 민주주의는 혼란과 폭력을 막을 수 없으므로 우파 기독교 사상이 그 공백을 대신한다. 종교적 태도는 적과 동지로 사람을 나눈다. 이제 목사님은 적인지 동지인지를 구분하기 위해 “너는 누구냐”고 묻는 대심문관이 된다. 시민이 직접 심문관이 되어 동료 시민을 감시하는 검문과 색출이 실행된다. 극렬 시위대가 공공기관 직원에게 “시진핑 XXX라고 외쳐봐”라며 검열한다.
그 다음으로 위생 감각이다.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은 우리의 순수한 공동체에 침투한 일종의 기생 바이러스다. 이런 이방인들은 일자리를 빼앗고 전염병을 퍼뜨릴지도 모른다. 극우 광장에서 아동과 여성, 청년들이 주로 이런 주장을 한다. 더러움에 대한 혐오는 동성애자, 이슬람인들에게도 적대감을 표출한다.
그 다음으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자위권 의식이다. 외부 주권 침탈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무력하기 때문에 제도 바깥에서 왕국을 따로 건설하고자 하는 열망이다. 자유 마을이라는 공동체 구상이나 기독교 대안학교를 통한 출산 장려로 자신들만의 자급자족형 삶을 지향한다. 이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극우 세력은 군인이나 경찰 출신들을 집회에 초청하며. 더 나아가 스스로 자유 통일의 전사를 자임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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