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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구속 취소, 참을 수 없는 불쾌함(1)

조수진 / 변호사

대환장파티입니다. 12·3 이후 많은 시민들이 윤석열 구속을 위해 힘을 합쳐 싸웠습니다. 남태령에서, 한남동 대통령 공관 앞에서. 무자비하게 추웠던 밤에 내란범을 체포하라, 밤샘 집회를 이어가던 시민들을 보호해 준 것은 서로의 온기와 얇은 은박담요 밖에 없었습니다. 그 담요 위로 곧 눈이 쌓였습니다.

수사기관들은 달랐습니다. 기관의 안위를 위해 행동했습니다. 공수처는 안일했던 공관 1차 진입에서 무기력하게 되돌아 나오며 ‘불상사를 최소화’하려 후퇴했다고 했습니다. 공문 한 장으로 체포 집행을 일임해 넘기려했고, 경찰은 법률적 논란이 있다고 반발하며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공조없이 공수처의 수사를 넘겨받은 검찰은 구속기간 연장이 당연히 될 것이라 생각하다 법원이 거절하자 아슬아슬한 늑장 기소를 했습니다. 법원은 논란을 그대로 두고 재판을 진행하는 경우 상급심에서 파기 사유가 될 수 있다며 구속을 취소해 버렸습니다. 대환장파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윤석열은 정치행위와 노동쟁의 금지, 언론출판 통제, 국회 해산, 선관위 서버 침탈 범죄를 계획해 착수했지만 3개월이 넘도록 제대로 된 조사 한 번 받지 않았고 마치 군림하는 존재처럼 유유히 공관으로 돌아가 경호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이 이룬 성취가 패스트리처럼 겹겹이 이어진 공무원들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응으로 참담하게 무너진 것입니다.

특히 담당 재판부의 구속취소 이유를 담은 보도자료를 보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불쾌함을 느낍니다. 인권을 껍데기 삼아, 사실은 공수처 수사권을 정조준하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럴거면 재판부는 구속 취소 심리에서 자신들의 의도를 드러내고 공수처 수사권, 즉 영장 청구권에 대해 더 진지하게 심리하고 질문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예상치 못한 결정을 내는 재판부를 법원 공식용어로는 ‘심리미진의 위법이 있다’라고 하고, 변호사들은 ‘벙커가 뒤통수 때린다’고 합니다.

법원의 윤석열 2025초기619 사건 재판부 설명자료 보도자료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구속기간 계산법이고 다른 하나는 공수처의 수사권한입니다.

누군가를 구금하고 수사를 할 경우에는 수사한다는 핑계로 장시간 불법 구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수사기관은 반드시 열흘 안에 증거수집을 마치고 법원에 기소를 해야 하고, 그 안에 수사를 다 못 끝내면 풀어주고 불구속 수사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때 만약 그 열흘 중간에 피의자가 자신의 구금을 풀어달라는 재판을 신청하게 되면, 그 기간은 열흘 기간에서 빼주게 됩니다. 수사기관 탓에 시간이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 결정에서 구속실질심사 기간을 열흘에서 어떻게 빼나 계산을 할 때 검찰은 일수로 계산해서 2일을 뺏고, 법원은 33시간 7분 시간으로 계산했습니다. 그 결과 10시간의 차이가 생겼고, 열흘에서 10시간이 지나 기소했다고 보고 법원에서는 영장이 무효가 되었으니 풀어주라며 구속 취소를 했습니다. 그동안 법원 판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해석입니다. 법원은 보도자료에서 말합니다.

“구속기간을 날로 계산하여 온 종래의 산정 방식이 타당한지 여부. 판단: 위 구속기간은 날이 아닌 실제 시간으로 계산하는 것이 타당함.
이유 :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신체의 자유, 불구속 수사의 원칙 등에 비추어 볼 때, 문언대로 피의자에게 유리하도록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함“
(서울중앙지법 제25형사부2025초기619 사건 재판부 설명자료 중)

피의자 인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권적 해석론으로서 백번 맞는 말입니다. 평소였으면 박수를 치며 환영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쾌한 것일까요.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 유명한 ‘미란다 원칙’의 주인공 미란다도 사실은 악독한 사람이었다고요. 내란범에게는 인권 판결하지 말라는 소리냐고요. 1960년대 미국에서 변호인선임권과 묵비권을 고지받지 못하고 자백을 해 버린 미란다 덕분에 그런 자백 증거는 무효가 되는 ‘미란다 원칙’이 확립되었습니다. 실제로 어니스트 미란다(Ernesto Miranda)는 재심에서 그 자백 증거 없이도 납치와 성폭력 유죄 판결을 받은 악인이었고 징역형을 받았으며 출소 후에는 술집 싸움에서 칼에 찔려 사망하는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고 합니다. 절차적 권리의 발전은 때로 그냥 우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란다 사건과 윤석열 사건은 다르기에 이번 재판부의 해석론은 너무 쌩뚱맞습니다. 미란다 사건에서 미국경찰은 헌법에 하라고 되어 있는 고지 의무를 명백히 안 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사건에서 검찰은 오히려 확립된 법원의 관행대로 기소했습니다. 게으를 수는 있으나 위법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혀 새로운 해석론으로 이걸 엎어버린 겁니다. 사법 소극주의를 펴온 법원에서 이런 과감한 해석론은 찾아보기 힘든 일입니다. 재판부는 하필 내란죄를 범하고 극우 세력을 급부상시켜 사회 대혼란을 가져온 권력자에게 이 파격적인 인권적 해석론의 1호 수혜를 주었습니다. 그 결과 이번 결정에 대해 반대하고 구속 처벌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말은 오히려 반인권적 주장이 되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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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외부원고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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