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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구속 취소, 참을 수 없는 불쾌함(2)

조수진 / 변호사

피의자 인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권적 해석론으로서 백번 맞는 말입니다. 평소였으면 박수를 치며 환영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쾌한 것일까요.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 유명한 ‘미란다 원칙’의 주인공 미란다도 사실은 악독한 사람이었다고요. 내란범에게는 인권 판결하지 말라는 소리냐고요. 1960년대 미국에서 변호인선임권과 묵비권을 고지받지 못하고 자백을 해 버린 미란다 덕분에 그런 자백 증거는 무효가 되는 ‘미란다 원칙’이 확립되었습니다. 실제로 어니스트 미란다(Ernesto Miranda)는 재심에서 그 자백 증거 없이도 납치와 성폭력 유죄 판결을 받은 악인이었고 징역형을 받았으며 출소 후에는 술집 싸움에서 칼에 찔려 사망하는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고 합니다. 절차적 권리의 발전은 때로 그냥 우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란다 사건과 윤석열 사건은 다르기에 이번 재판부의 해석론은 너무 쌩뚱맞습니다. 미란다 사건에서 미국경찰은 헌법에 하라고 되어 있는 고지 의무를 명백히 안 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사건에서 검찰은 오히려 확립된 법원의 관행대로 기소했습니다. 게으를 수는 있으나 위법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혀 새로운 해석론으로 이걸 엎어버린 겁니다. 사법 소극주의를 펴온 법원에서 이런 과감한 해석론은 찾아보기 힘든 일입니다. 재판부는 하필 내란죄를 범하고 극우 세력을 급부상시켜 사회 대혼란을 가져온 권력자에게 이 파격적인 인권적 해석론의 1호 수혜를 주었습니다. 그 결과 이번 결정에 대해 반대하고 구속 처벌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말은 오히려 반인권적 주장이 되었습니다.

평생 감옥에서 나올 수 없을 사형과 무기징역형이 예정된 내란죄 범인을 구속 취소해서 풀어주는 대단한 일을 해버렸는데 욕도 별로 먹지 않았고 피고인 인권을 위했다는 명분도 챙겼습니다. 윤석열이 구속된 것은 증거인멸을 계속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구속 사유는 과연 모두 다 소멸되었는지에 대한 실질 판단도 쏙 빼놓았습니다. 이것이 불쾌감의 원인입니다.

재판부 보도자료가 주는 더 큰 불쾌감은 사실 다른 데 있습니다. 공수처가 영장 청구권이 있었느냐라는, 지금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는 주요 쟁점에 대해서는 정작 냄새만 피우고 명확한 판단을 하지 않고 피해 갔기 때문입니다. 더 큰 혼란이 우리 앞에 있게 되었습니다. 재판부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보도자료 1번 인권적 ‘구금기간 해석론’은 판사 본인 재량권 내의 권한을 행사했다는 확실한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방패일 뿐이고, 내심의 의사는 보도자료 2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설령 위와 같이 구속기간이 만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소가 제기되지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구속 취소의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됨”으로 시작되어 “공수처법상 수사처의 수사범위에 내란죄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윤측 변호인 주장을 들면서 이 점에 대해 법령에 명확한 규정이 없고 아직 대법원 판단도 없기에 “수사과정의 적법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부분입니다.

윤석열 내란죄 1심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재판부가 가진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에 대한 해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수사권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공수처가 생긴 지 5년, 지금처럼 여러 수사 주체가 다 나서야 하는 큰 규모 사건은 처음입니다. 수사권 규정 해석이 필요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라면 이렇게 흘리듯 지나갈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구속취소 심리를 할 때, 그 쟁점에 대한 재판부의 명확한 의문을 제기하고 치열하게 검찰과 변호인을 토론시키고 판사의 판단 근거를 분명하게 결정문에 적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납득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다가 이렇게 온 국민의 뒤통수를 칩니까. 절차적 적법성에 대한 재판은 중요합니다. 나라의 운명이 갈릴 뻔한 내란죄의 죄질을 밝혀 처벌하고, 우리나라에서 다시는 누구도 그런 죄를 저지를 엄두를 낼 수 없게 단죄하는 실질에 대한 재판은 더욱 중요합니다.

대통령이 내란죄를 일으켰기에 그 수하에 있는 수사기관들을 일괄 통제할 구심점이 부재합니다. 대혼란의 시기에 굴리고 밀어 겨우 법대에 세운 사건을 껍데기 좀 까졌다고 열어보지도 않고 공소기각 시키려는 것은 아닌가요? 재판부는 공수처 수사권에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앞으로의 재판에서 적극적으로 묻고 검찰에 추가 입증을 요구해야 합니다. 공소유지를 맡은 검찰은, 가진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점검하고 재판부에서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모든 부분에 철저하게 방어를 준비해야 합니다.

법원이 그동안 우리 사회 약자들에게 내린 무자비하고 잔인한 법 해석은 셀 수 없습니다. 유독 권력자 윤석열에 대해, 재판부는 그동안 약자와 노동자에 대해서는 볼 수 없던 세심함을 첫 번째로 적용하면서 정작 꼭 해야 할 일은 안했습니다. 이번 구속취소 결정에서 보여준 모습이 앞으로의 내란죄 재판에서도 이어진다면 사회정의와 질서를 유지하는 판사가 아니라 단순 법기술자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없길 바랍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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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외부원고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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