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성’ 개념이 있다. 독일 출신 미국 사상가 한나 아렌트의 문제작 (1963)에 나온다. 상당수 유대인 출신 지식인들은 1933년에 히틀러가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자 서둘러 미국 등지로 망명했다. 살기 위해서! 한나 아렌트도 그 중 하나였다. 유대인 등 600만 명을 학살한 나치 권력의 폭력은 물론 그에 동조한 평범한 국민들의 행태를 둘러싸고 당시 지식인들 사이엔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 와중에 아렌트는 늘 이런 의문을 품었다. ‘과연 나치 학살자들은 어떤 존재이기에 그 무자비한 일을 저질렀을까?’ 그 극악무도했던 히틀러도 1945년에 자살로 마감하고 2차 세계대전도 끝이 났다. 흔히 우리는 (개발론 내지 발전론의 시각에서) 폐허와 잿더미로부터 ‘라인강의 기적’이 어떻게 탄생했는가에 관심을 갖지만, 아렌트는 학살자의 존재론을 물고 늘어졌다. 마침내 1961년에 (1945~46년 독일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이어) 또 하나의 세기적 재판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렸다. 주인공(?)은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이었다.
과연 그는 누구인가? 그는 나치 독일의 친위대 장교(중령)로 유대인 학살 실무를 총괄했다. 1945년 5월, 독일이 연합군에게 항복하자 살기 위해 은둔의 삶을 택했다. 그는 독일 패전 뒤 전쟁포로로 심문을 받던 중 탈출해, 독일 북부 오지 마을에서 오토 헤닝거라는 이름으로 삶을 즐긴다. 그 뒤 1950년 6월엔 리카르도 클레멘트가 되어 아르헨티나로 갔다. 먼저 탈출해 은둔해 사는 전직 나치들이 ‘좋은 친구들’로 살고 있던 곳! 2년 뒤 아내와 아들 삼형제까지 합류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의 한적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 비밀정보국(모사드)의 집요한 추적으로, 마침내 1960년 5월 극적으로 체포됐고 약 2년여 검찰 조사, 법원 판결 끝에 사형됐다. 그 과정이 영화 에 잘 묘사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당시 한나 아렌트가 미국 교양지 의 요청으로 이 예루살렘 전범 재판을 면밀히 관찰하고 보고하면서 ‘악의 평범성’ 개념을 제시한 것!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나는 히틀러가 만든 절멸 작동기계의 작은 톱니바퀴 중 하나일 뿐”이라며 학살 책임을 부인했다. “그저 명령만 따랐을 뿐”이었다는 것, “지시 내용을 성실히 수행 않았다면 오히려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란 말(?)! 아렌트의 눈에, 아이히만은 평범한 시민에 불과했지만, ‘조국’ ‘충성’ ‘영광’ ‘성실’ ‘복종’ 등 상투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일개 ‘조직인’으로 행동한 결과 끔찍한 학살도 죄책감 없이 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악의 평범성’이 탄생했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명제다. 우리 주변에도 아무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얼마든지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이들이 많다. 윤석열의 계엄(내란)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이들이 그 증거다.
나는 1987년 10월, 느지막이 군 입대 후 훈련소에 갔다. 난생 처음 받은 충격은 “절대 질문 하지 말라”는 조교의 말(?)이었다. ‘아무 생각 말라’, ‘무조건 복종하라’! 1981년부터 1986년까지의 대학(원) 공부에서는 “질문을 많이 하라”가 기본 태도였고 권장 방식이었다. 그런데 군대에서 경험한 바로 이 3무, 즉 무사고, 무질문, 무분별이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 연결돼 무자비로 이어짐을 깨달은 건 한참 뒤다. 그리고 최근까지 이 아렌트 통찰의 탁월함에 무릎을 치곤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최근 들어 아렌트의 명제에 정면 반박하는 논리가 부각됐다. 독일 철학자 베티나 슈탕네트(1966~)가 쓴 (2011)이 바로 그것! 슈탕네트에 따르면,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에 속았다.’ 슈탕네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이 재판을 받을 당시, 그가 취한 자세, 태도, 발언 등은 모두 상식적인 사람, 평범한 사람, 일반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간교한 ‘위장술’, 즉 ‘쇼’였다. 그 근거로 슈탕네트는 재판 이전에 아이히만이 했던 발언들이나 기록물들을 끈질기게 추적, 분석했다. 그 결론은, 아이히만은 ‘평범인’이 아닌, ‘확신범’이었다는 것! 요컨대, ‘악의 확신성’ 명제다. 그렇다면 왜 그가 ‘확신범’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우선, 슈탕네트는 “무엇보다 아이히만 스스로 열심히 말하고 다니며 글을 썼다”고 했다. 아이히만과 관련된 문서와 기록, 진술서는 히틀러나 괴벨스를 포함한 나치 전범들 모두의 것보다 더 많다는 것!
더 중요한 점은, 바로 그런 아이히만의 과거 흔적들 속에 이미 반유대인주의 내지 인종주의적 신념이 일관되게 보인다는 것! 아르헨티나에서 도피 생활을 하면서도 아이히만은 매주일 ‘좋은 친구들’과 함께 ‘독일과 세계의 발전’을 주제로 학술 세미나처럼 토론했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과거에 대한 반성 내지 성찰은 전혀 없이, 모두 나치의 우월성과 대량학살의 정당성을 옹호하면서 새 시대의 전망을 모색했다. ‘확신범’ 확신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아이히만은 ‘인생 세탁’을 위해 자기 삶을 철저히 ‘평범화’했다. 즉,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은 낮에는 토끼 사육사로 일하고, 일과 후에는 바이올린 연주와 와인을 즐겼으며, 저녁 시간에는 독서와 집필에 미친 듯 몰두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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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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