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또다시 ‘부자 감세’ 논란을 자초했다. 정부는 현행 상속세를 폐지하고 ‘유산취득세’로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피상속인이 남긴 전체 재산에 누진세율을 적용하던 방식에서, 각 상속인이 받는 몫에 따라 개별 과세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공평 과세’로 포장될 수 있지만, 속내는 전혀 다르다. 실제로는 상속재산이 클수록 세부담이 대폭 줄어드는 구조다. 더구나 자녀 공제액을 현행 5천만원에서 5억원으로 무려 10배나 늘리겠다는 방침까지 포함됐다. 결국 초고액 자산가들의 부담을 대폭 덜어주려는 꼼수에 다름아니다.
예를 들어 상속재산이 15억원인 경우를 보자. 자녀 3명이 균등하게 물려받을 경우, 현행법하에서는 자녀 1인당 8천만원씩 세금을 내야 하지만 정부의 유산취득세 안으로 전환되면 단 한 푼도 내지 않게 된다. 자녀 공제 5억원이 적용되면서 과세표준이 사실상 ‘제로’가 되기 때문이다. 국민 눈높이에서 보면 이는 단순한 세제 개편이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부의 대물림’ 제도 강화일 뿐이다.
나라살림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상속세를 내는 피상속인 중 최상위 1%(3천590명)가 전체 상속세수의 89.1%를 부담하고 있다. 대한민국 상속세는 ‘초부자세’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들 1%를 위해 세제 개편을 한다는 것인가? 이 정책이 시행된다면 국가 재정의 공정성과 형평성은 심각하게 훼손된다. 정부가 법인세 인하와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줄곧 부자 감세 정책을 밀어붙여 온 가운데 이제는 상속세까지 대폭 깎아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법인세 인하로 기업이 더 많은 투자를 했다는 증거도 없고 종부세 완화로 서민 주거 안정이 개선됐다는 근거도 희박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감세가 초래하는 국가 재정 악화다. 세금이 줄면 결국 복지재정, 지방교부세, 연구개발 예산 등 국가의 미래와 서민들을 위한 재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정부는 이미 R&D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지방정부에 내려가는 교부세도 축소했다. 복지예산 역시 감소세를 보이며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번 유산취득세 개편은 국가 재정 위기라는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정부는 상속세 부담이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실제 상속세 부담률은 상속이 발생하는 전체 가구 중 1.6%에 불과하다. 나머지 98% 이상의 국민은 상속세와 무관하다. 오히려 현재의 상속세 구조는 부의 편중을 완화하고 자산 격차를 줄이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역할을 해왔다. 그걸 뜯어고쳐 부자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은, 결국 사회적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부자 감세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 부의 대물림을 용인하고 부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세제 개편은 조세 정의에 정면으로 반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상속세 개편안을 전면 철회해야 한다. 재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극소수 초부자가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한 공공재다. 재정의 공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훼손하는 유산취득세 개편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