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번 윤석열의 계엄 선포는 대통령과 자신의 부인이 처한 정치적 사적인 위기, 즉 ‘주관적인 비상사태’를 ‘객관적 비상사태’라고 둘러댄 것일 가능성이 크고, 국무위원이나 국민의힘조차 설득하지 못할 주관적 결정이었다.
계엄 포고령 1호 1항 ‘국회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불법적인 조항에서 그의 주관적 위기의식, 야당에 대한 적대의식이 잘 드러난다. 그는 헌재에서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한 게 아니라 반국가적 활동을 못하게 막은 것”이라고 옹색하게 변명한다. 김용현 국방부장관과 최종 포고령을 손질하면서 “법적으로 검토해서 손댈 건 많았다”라고 실정법상 결함이 있었다는 것을 약간 인정하고 있으나, 이런 모든 점들을 무시하고 ‘주관적’ 의지로 계엄을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과 김용현은 비상계엄이 약간의 절차적 하자를 다 압도할 수 있는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그 명령이 그대로 집행되면 야당이나 모든 비판 세력의 정치활동을 제압하고,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그의 헌법위반 여부는 헌재가 판결할 것이고, 내란 행위의 불법성은 이후 수사와 형사재판을 통해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헌재의 평결은 사실 판사들의 헌법 해석의 영역이므로, 최악의 경우 이들의 극단적인 정치적 결정, 심우정 검찰총장이 말한 것처럼 그냥 몇 사람의 ‘소신’에 의해 탄핵을 기각할 수도 있다. 그 경우 헌재나 헌법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온 국민이 똑똑히 목격하고 거의 압도적 다수의 법률가들이 예상하는 윤석열 탄핵 결정과는 배치되는 몇 재판관의 ‘소신’으로 탄핵이 기각되면 한국은 이제 법치보다는 정치적 의지, 즉 적나라한 권력투쟁만이 난무하는 지옥이 될 것이다.
민주당이나 탄핵 인용을 확신하는 국민들은 윤석열이 불법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거짓말과 억지 논리를 펴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내란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국힘 의원들과 그가 임명한 국무위원, 검찰, 경찰, 주요 국가기관장들은 실정법보다는 정치 논리로 이 상황을 본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더라도 내란 사태가 진정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들은 이미 헌재, 공수처 등의 법의 집행을 불법이라고 계속 주장해 왔다. 그들과 아스팔트 우익들은 향후 수사나 법원의 모든 조치를 정치적 사안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에 ‘법과 상식’은 이들의 행동을 주저 앉히는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50대 중반 이상의 군사정권을 겪은 한국인들은 사실 법과 도덕보다는 권력 논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2025. 2. 25)의 조사에 의하면 2000명 응답자 중 17%는 계엄을 옹호하고, 탄핵을 반대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사람도 20% 정도에 달한다. 윤석열 등 내란 주범들이 대통령의 통치권이 법 위에 있다고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 것도 이들이 20% 정도 국민의 생각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변화, 군대의 변화는 이들의 머리와 몸에 스며들어 있지 않다. 이들이 민주화 이후 개정된 계엄법, 즉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는 조항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무력화하려 한 것은 이들이 개정된 계엄법에 무지해서라기보다는 군사정권 시기의 아비투스가 이들을 지배하고 있는 데서 온 무의식의 결과일지 모른다.
윤석열이 계엄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수없이 거짓말을 반복하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도덕율이 적용되는 범위는 자신의 카르텔 내의 사람들, 동문·동료, 거래관계 사람들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도덕성과 불법성, 그리고 정치성은 한국 검찰조직의 특성이기도 하다. 과거의 검찰, 그리고 아마도 윤석열과 그의 부인인 김건희가 그렇게 살았듯이 그들은 편법과 속임수를 쓰더라도 목표를 달성하면 그것이 곧 선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기의 검사나 공안당국도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고문이나 간첩 조작을 하고서도 안보의 이름으로 정당화했으며, 이들 국가폭력 희생자들의 삶과 가정이 처절하게 파괴되어도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았고 반성이나 사죄를 한 적도 없다.
이것이 바로 극단적인 권력정치의 행위자들 혹은 극우 파시즘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들은 적을 지목하고, 제거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 근거이자 국가의 목표라고 보기 때문에, 적에 대한 모든 폭력은 용납될 수 있다고 본다. 윤석열은 취임 후 거의 모든 담화에서 ‘적’을 지목했고, 언제부터인가 공산전체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적을 설정하고 군사력을 사용해서 내부의 적을 제거하는 일이야말로 파시즘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이다. 노상원의 수첩에 ‘수거’ 대상을 설정한 것은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처리’ 대상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노상원은 그들에 대한 체포나 구금, 그리고 폭사나 ‘수장’까지 구상했다.<계속>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외부원고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