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바로 극단적인 권력정치의 행위자들 혹은 극우 파시즘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들은 적을 지목하고, 제거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 근거이자 국가의 목표라고 보기 때문에, 적에 대한 모든 폭력은 용납될 수 있다고 본다. 윤석열은 취임 후 거의 모든 담화에서 ‘적’을 지목했고, 언제부터인가 공산전체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적을 설정하고 군사력을 사용해서 내부의 적을 제거하는 일이야말로 파시즘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이다. 노상원의 수첩에 ‘수거’ 대상을 설정한 것은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처리’ 대상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노상원은 그들에 대한 체포나 구금, 그리고 폭사나 ‘수장’까지 구상했다.
나치즘 하의 어용 법학자 칼 슈미트(Schmitt)는 “주권적 권위는 법률적 질서를 넘어선다”고 히틀러 통치를 옹호했는데, 윤석열과 국힘 지도부가 생각하는 통치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즉 비상계엄이 법적 구속을 벗어난다는 이들의 생각이 바로 파시즘 논리다. 그들은 법을 최고의 규율 체제로 보지 않고, 법 위에 주권자 즉 최고 권력자의 의지가 있다고 본다.
앞의 의 조사 대상자 중 비상계엄은 정당하며, 필요하면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는 사람들이 대체로 파시즘 지지 세력이다. 그 주력인 보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체계가 가르치는 구원론, 선악 이분법, 그리고 적과 우리의 이분법 논리에 따라 행동한다. 보수 기독교인들이 보는 ‘신과 마귀’의 이분법은 냉전 하의 ‘적과 우리’ 이분법, 파시즘의 인종주의와 동일한 사고 구조를 갖는다. 그들에게 신과 국가 최고 지도자는 같은 반열에 선다. 윤석열의 담화에 나온 공산전체주의 용어는 한국의 극우파 지식인들로 구성된 ‘한국 자유회의’의 문건에서 나온 것인데, 그들은 주권이란 최고 권력자의 것이며, 개인이 주권자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이들 아스팔트 극우파에게 악의 무리에 대한 ‘정의로운 폭력’의 행사는 성스러운 주권권력의 행사로 간주된다.
이번 윤석열 석방 과정에서 지귀연 판사의 시간 단위 구속시간 산정, 심우정 검찰총장의 즉시항고 포기는 법의 이름을 빈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이다. 지귀연 판사는 자신의 판단이 법에 의한 것이라 하지 않고 ‘변호인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했고, 검찰총장은 자신의 결정이 ‘소신’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이런 결정이 사실상 대통령 윤석열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거의 실토하고 말았다. 한국은 법의 집행이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인권보호’를 위해 작동하는 봉건 왕조시대로 되돌아갔다.
물론 국힘 의원 전부가 윤석열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국힘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아스팔트 극우의 행동에 따라 움직인다. 윤석열과 검찰을 정점으로 해서 국힘과 최상목 등 고위 관료, 를 비롯한 언론, ‘김앤장’과 같은 대형 로펌, 그리고 재벌의 네트워크가 극우 행동대의 앞뒤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한국의 기득권 카르텔이다. 이들은 윤석열이 탄핵 당하거나 이후 정권교체가 되면 모두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집단이다. 이들 내부의 양심적인 세력 일부는 비상계엄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있고, 서부지법 난동도 비판적으로 보지만,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윤석열과 정치적 갈등 관계에 있었던 유승민, 한동훈 등이 모두 윤석열의 석방을 환영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들 모두에게 대통령의 헌법위반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직 정치적 이해,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기득권 수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치학자 라스키(Laski)가 말했듯이 파시즘은 언제나 국가권력과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무한한 권력을 부여하고, 노동자나 사회적 소수자, 외국인 등 약자들의 기본권은 완전히 박탈한다. 윤석열 정부 이후 몇 번 발생한 ‘입틀막’ 사건과 집요한 언론장악 시도가 바로 극우 파시즘적 통치의 대표적인 전조였다. 조선 노동자 파업 진압,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 결정과 ‘의사 처단’ 포고령에서 그러한 과거의 군사독재 혹은 파시즘적 사고가 드러났다. 지난 3년 동안 윤석열의 막가파식 정치에 대해 전혀 반대하지 않았던 국힘 의원들의 모습에서, 자기 이익 때문에 국가와 법질서의 붕괴도 용인했던 과거 온건보수, 기회주의적인 보수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탄핵은 반드시 인용되어야 하지만, 탄핵 결정이 어떻게 나오더라도 한국의 미래는 매우 불안하고 불투명하다. 그리고 탄핵 이후의 시대적 과제는 결코 정권유지/정권교체로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집권, 즉 정권이 교체되어도 지금 극우화된 세력의 폭력과 저항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국힘이 아스팔트 극우와 거리를 두어야 하고, 민주당이 이들 온건보수 세력과 손을 잡고 개헌과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국이라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 트럼프가 통치하는 미국은 트럼프가 아무리 잘못해도 미국의 패권과 자본주의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나라가 이렇게 적대적으로 분열되어 내전 상황이 지속되면 지난 50년 동안 성취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성과가 일거에 원점으로 돌아가고 한국은 3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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