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 포고령 1호의 모든 담론은 바로 21세기에 부활한 20세기 군사주의 파시즘, 19세기 왕당파의 논리였다. 그래서 어제 헌재 판결에서 집약된 내란 진압은 미래로 나가는 발걸음이라기보다는 또다시 19세기, 20세기가 남긴 쓰레기와의 싸움이다. 이번 윤석열 내란 진압은 작가 한강의 말대로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 것”이다. 전두환 군부의 5.18 쿠데타와 학살,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의 역사가 온 국민에게 생생하게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 투입 병사들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계엄군을 몸으로 막은 국회 보좌관들과 시민들, 그리고 이후 지금까지 탄핵을 요구해온 시민들의 머리와 가슴에 5.18의 기억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헌재의 탄핵 인용으로 ‘12.3 윤석열의 난’은 진압되었다. 그런데 극히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이 탄핵 결정이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바로 내란 지지, 동조 세력의 힘이 한국에 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국민의힘 지도부, 한덕수 최상목 등 한국 최고 관료 엘리트들은 국가의 경제, 외교, 사회 모든 부분을 형편없이 망가뜨리고도, 지난 122일 동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가져다준 책임 주체이면서도 국민들에게 어떤 사과를 한 적도 없고, 책임을 진 적이 없다. 이번 헌재의 국회 측 변호인 대표인 송두환 변호사는 이들 내란지지 세력을 영남지역의 대형 산불 이후 남은 ‘잔불’이라고 묘사했지만, 그들은 ‘잔불’이 아니라 곧 닥칠 대선에서 또다시 집권해서 민주주의의 성과를 모두 후퇴시킬 수도 있는 마그마에 가깝다.
국민의힘 지도부를 비롯한 이번 내란을 지원한 세력에 대해서는 엄한 책임 추궁과 단죄가 필요하다. 내란 수괴인 윤석열과 그의 내란을 기획, 지원한 세력에 대한 처벌이 없으면 이러한 쿠데타는 재발할 것이고 봉건 파시즘의 헌정 문란 사태는 다시 등장할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 탄핵 결정은 시작에 불과하고 내란 사태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와 형사, 민사적 처벌은 지금부터 본격화되어야 한다. 만약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없고, 이번처럼 실패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없다면, 지금 한덕수와 최상목처럼 헌법을 위배하고도 버젓이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을 한다면, 한국은 무법천지 약육강식의 나라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 내란 세력에 대한 엄한 처벌은 절대 정치적으로 타협이나 양보할 사안이 아니다.
박근혜 탄핵의 경우와는 달리 이번 윤석열의 난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내란을 여전히 지지한 이유는 윤상현이 전광훈 목사에게 90도 절을 한 일, 극우 선동가 전한길을 당의 최고 대변자로 대접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이들이 우익 대중을 자신들의 중요한 지지기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익 대중은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적을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극우성향의 사람들인데 이들은 자유민주주의, 법치, 언론자유를 유보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전쟁을 벌여서라도 적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로 60대 이상의 노령층, 극우 보수 기독교인, 경상도 사람들인데 이들은 미국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정치 경제적 소외, 잘못 주입된 지식이나 정보, 오도된 신념, 신앙, 사고방식 때문에 이 극우 정치세력을 지지한다.
이 중에서도 윤석열 내란을 적극 지지한 보수 기독교인들의 집단행동은 한국의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풀어야 할 큰 숙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 즉 신앙에 기반을 둔 극단적인 정치적 행동은 대화나 설득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가 정치와 결합되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신앙에 기반을 둔 우익 폭력, 기독교 파시즘화는 사실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내란 국면에서 드러난 극우 파시즘의 사회적 기반을 더 세심하게 살피고 그 극복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게 여러 나라에서 그러하듯이 한국의 대중 차원의 극우 파시즘 세력의 등장은 불평등, 부의 극단적 편중, 그리고 사회적 약자의 고립과 소외, 파편화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질병인 이런 사회적 흐름은 정치 변화와 무관하게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윤석열 탄핵 인용으로 내란은 일차적으로 진압되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한국 정치는 민주당의 몫이 되었다. 당장은 대선이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겠지만, 이후 대선으로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그것은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하다. 산적한 국가 사회적 과제는 결코 정권교체로 해결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은 민주당, 조국혁신당을 포함한 여러 야당, 그리고 윤석열 탄핵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촛불행동이나 비상시국회의를 포함한 시민사회가 함께 이끌어나가야 한다. 민주당이 이 모든 시대적 과제를 대선 승리라는 목표로 축소시키면 2016-2017 촛불시위의 성과가 문재인 정부에게 위임되었다가 정치 초보 윤석열에게 정권을 넘겨준 과거의 오류를 반복할 위험성이 크다. 그래서 윤석열 탄핵 인용은 내란의 종결이 아니라 정치사회 개혁의 시작에 불과하다.<끝>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외부원고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