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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남원공공의대 설립 더 이상 미루지 말라


서남대 의대에 남원공공의대를 설립하자는 법안이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여야 합의로 발의돼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 49명을 활용해 공공의대를 설립키로 합의한 바 있음에도 이 법안은 지금껏 ‘심의 중’이다. 남원공공의대 설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그것은 단지 지역민의 염원을 넘어 도시와 농촌 간 심화되고 있는 의료 불균형과 국가 의료시스템 전반의 취약성을 바로잡기 위한 ‘필수 의료 개혁’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도농(都農) 간 의료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수도권의 대학병원과 민간병원에는 의료 인력과 장비, 첨단기술이 집중돼 있지만 특히 농촌 지역은 의사 부족은 물론 소아과 등 필수 진료과의 공백 현상이 상시적이다. 농촌에서는 아이를 낳을 병원이 없어 원정 출산해야 하고 응급환자는 골든타임을 놓치기 일쑤다. 의료시스템의 기본이라 할 역내 1차 의료체계가 무너지면서 중증 환자는 물론 주민들의 건강관리조차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 같은 불균형은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국가가 공공의료의 기능을 방기한 결과이며 이를 바로잡을 제도적 장치 중 하나가 바로 ‘공공의대 설립’이다. 특히 남원공공의대는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을 활용함으로써 기존 자원을 재편성하고 지역 거점 공공의료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겠다는 전략적 접근이다. 단지 의사 수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에 헌신할 공공의료 인력을 육성해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의료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

남원시는 이미 공공의대 부지의 50% 이상을 매입하며 설립 준비를 마쳤고 전북자치도의회와 남원시의회는 수차례 국회에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이는 180만 도민의 절박한 요구이자 수년간 준비된 사회적 합의이다. 당시 윤석열 정부도 대선 후보 시절 남원 공공의대 설립을 공약했으나 정권 출범 이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 사이 의료계는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등 내홍을 겪으며 의료시스템 붕괴를 걱정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국민들이 체감하는 의료체계의 취약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공공의료는 시장의 손에만 맡겨둘 수 없는 공공재다. 특히 감염병 대응, 재난 의료, 필수 진료과 인력 확보와 같은 영역은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민간의료가 외면하기에, 반드시 공공이 나설 수밖에 없다. 남원 공공의대는 이러한 영역에서 일할 인재를 양성하는 ‘국가 의료안전망’의 초석이다.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공공의료 기반을 마련하고 도농 간 의료 격차를 줄이며 국민 누구나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에 응답하는 것이다.

남원공공의대 설립은 특정 지역의 이익을 위한 요구가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의료체계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고 누구도 의료 사각지대에 방치되지 않도록 하자는 대국민 약속이다. 국회는 더 이상 이 법안을 외면하지 말고 보건복지위를 중심으로 즉각 심의에 착수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국민을 위한 정치의 본분이며 국가가 의료 약자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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