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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 마이너스 최악 위기, 한국 경제 대수술 기회로(2)

홍종학 / 전 국회의원

고속 성장과 규제 완화는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거품을 불러왔고, 1929년 10월 ‘검은 목요일’의 주식시장 붕괴로 대공황이 시작됐다. 농민 보호 명분으로 관세를 인상하려 했으나, 실제로는 기업들의 강력한 로비로 관세 인상 품목이 대폭 확대된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통과됐다. 1000여 명의 경제학자들이 반대 성명을 냈을 정도로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후버 대통령은 마지못해 법안에 서명했다.

곧 유럽 각국이 보복 관세로 맞섰고, 세계 교역량이 3분의 2까지 줄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무역이 위축되어 전 세계 경제는 극심한 피해를 겪게 되고, 이로 인해 대공황은 전무후무한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금본위제도를 폐지하고 선별적 관세로 대응한 스웨덴, 대영제국 내 관세 인하로 무역 감소를 막은 영국 등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반면, 1차 세계대전 배상금 문제로 경제가 파탄난 독일은 이중고를 겪으며 나치가 부상했고, 군비 확장으로 경제난을 타개하려다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됐다.

대공황의 교훈은 경제학자뿐 아니라 정치인들에게도 깊이 남아, 1920년대 자유방임주의 정책을 본 따 친기업·규제완화·감세를 내세웠던 레이건 정부조차 관세 인상에는 신중했다. 미국은 강달러 정책과 서비스·자본수지 흑자로 무역적자를 상쇄하며, 소비자 후생을 크게 증대시켜 왔다. 달러 패권 유지를 위해서도 강달러 정책이 선호됐다.

이런 미국의 전통과 상이하게 트럼프 정부는 미국 제조업의 부흥을 내걸고, 고율 관세를 협상 지렛대로 삼아 상대국의 비관세 장벽을 낮추고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려 한다. 하지만 이 정책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글로벌 공급망이 극도로 분절화됐다. 예컨대 애플의 휴대폰은 중국에서 조립하지만, 부품은 세계 각지에서 공급된다. 관세는 이런 효율적 공급망을 교란해 세계 교역을 위축시킬 것이며 기업 투자를 저해할 것이다. 특히 예측 불가능한 정책 변화는 장기적 투자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둘째, 트럼프 정부가 내세운 제조업 부흥은 단기간에 달성할 수 없다. 미국은 이미 생산기반이 상당 부분 해외로 이전되어 제조업 공장이 없는 공동화 현상이 오래 지속되어 왔다. 처음부터 제조업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미국 기업의 입장에서 관세 정책이 장기적으로 유지된다는 보장 없이는 기업 투자가 쉽지 않다.

셋째, 제조업의 핵심인 기능인력이 부족하다. 제조업 공동화 현상은 기능인력 양성을 불가능하게 했으며, 서비스업의 높은 임금에 상응하는 제조업 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이는 해외 기업들의 미국 투자도 지속가능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역시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은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냉전 이후 동맹국과의 협력을 중시해온 미국이 유럽, 멕시코, 캐나다 등 우방국까지 적대시하는 정책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트럼프 정부는 이를 ‘협상의 기술’로 포장하지만, 타국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당장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장기적으로는 매우 큰 비용을 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으로의 여행객이 급감하는 등, 트럼프 정부의 일방주의로 인한 경제적 부작용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수준에서 봉합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학자들은 미국 정부의 신뢰 하락과 함께, 각국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이 높아졌음을 우려한다. 무역 분쟁의 승자는 자국 기업과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별적 대응국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세계 무역 자체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로, 글로벌 경기 침체 신호가 있을 때마다 투자자들의 ‘현금인출기’ 역할을 해왔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으로 세계 무역이 급감하면, 한국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대표적 국가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 성장률이 1%대에 머물 것이라 전망했고, 주요 투자은행들도 1% 미만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한국 경제는 가계·기업·부동산 부채 등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 오랜 기간 부동산 산업에 의존해온 탓에 산업 경쟁력도 약화됐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내수 침체,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한 저가 상품의 대량 유입 등은 한국 기업에 큰 부담이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이익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곧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우리는 계엄과 탄핵 사태라는 정치적 격랑 속에서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전례 없는 충격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의 뿌리는 단지 정치적 사건에만 있지 않다. 한국 경제의 경쟁력은 지난 수십 년간 부채주도, 부동산주도 성장에 기대며 점차 약화돼 왔다. 이제는 과거의 성장 방식에 더 이상 기대서는 안 된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부채와 부동산 중심의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서 혁신과 생산성 중심의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경제가 구조적 대수술에 나설 마지막 기회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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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외부원고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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