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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석연 공동선대위원장 ‘신중론’ 재고해야


공직자, 그중에서도 국가의 사법적 정의를 구현해야 할 법관이나 고위 공직자의 일탈 행위는 단순한 개인의 비위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곧 법치의 기반을 뒤흔드는 심각한 위협이며,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공동체의 위기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드러난 서울중앙지법 지귀연 부장판사의 유흥주점 향응 의혹은 실체가 확인되기 전이라 해도 이미 우리 사회에 깊은 충격파를 던졌다. 법을 다루는 재판관이 접대와 향응의 의혹 중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사법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크게 손상됐다. 이런 의혹이 있을 경우, ‘사실관계가 확인될 때까지 지켜보자’는 관망적 태도는 공직사회와 사법부를 더 깊은 불신의 수렁으로 빠뜨릴 뿐이다.

이석연 더불어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특검법 추진과 관련해 ‘신중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일면 타당한 우려로 읽힐 수 있다. 정치적 목적이나 선거를 앞둔 정략적 고려가 법적 절차를 앞설 경우, 오히려 사법 정의에 대한 국민적 확신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공직자의 중대한 일탈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단호한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된다. 진상 규명은 오직 사실과 증거에 입각해 이뤄져야 하며, 관련자가 고위직일수록 그 책임은 더욱 엄중하게 묻고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공직사회의 부패가 반복되고 만연하는 이유는 발본색원의 단호한 처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크고 작은 비리가 터졌지만,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은 미온적이었고, 때로는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버티면 산다’는 그릇된 학습효과와 내성만 남겼다. 이러한 현실에서 지귀연 판사의 향응 의혹에 대해서도 “대가성 여부에 따라 뇌물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이 위원장의 발언은 중요한 경고이자 사법부가 자정 능력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기대의 표현이다.

법 위에 있는 사람은 없다. 고위 공직자, 특히 사법부 구성원이라면 누구보다 높은 도덕성과 책임 의식을 갖춰야 한다. 공직자로서의 윤리적 해이, 특히 개인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거나 부정한 이익을 취한 자에겐 정치적 고려 없이 철저한 수사를 거쳐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러한 단호한 조치만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토록 하는 최소한의 예방책이다.

더 이상 ‘제 식구 감싸기’는 사법의 퇴행이다. 대법원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해당 재판관의 사임 또는 직무배제를 포함한 조치를 즉각 취해야 한다. 사법부는 지금 스스로 신뢰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를 맞고 있다. 국민은 판단할 줄 안다. 그러나 국민이 판단하고 행동에 나서기 전에라도 제도와 시스템은 반드시 먼저 작동해야 한다. 사법의 권위는 무오류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오류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법관의 일탈에 대한 엄정한 처벌은 사법부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자, 부패가 판치는 사회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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