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교단의 심장이 서서히 멈춰가고 있다. 교사의 가슴은 무너지고, 교실은 더 이상 배움의 공간이 아닌 생존의 전선이 되었다. 최근 교사노동조합연맹의 설문조사 결과는 그 위기의 깊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교직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10명 중 3명도 되지 않았고, 교직에 대한 사회적 존중은 이미 바닥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그 속에서 58%의 교사가 이직이나 사직을 고민했고 23.3%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이는 단순한 직무 스트레스를 넘어, 전문직으로서 교사의 정체성과 존재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다.
무엇이 교단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 중심에는 교권 침해와 악성 민원이 있다. 서울 서초구와 전북의 초등교사 순직 사건들이 사회적 충격파를 던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사들이 다시 악성 민원의 공포 속에 놓였다. 지난해 교육부가 집계한 지역교권보호위원회 개최 건수 중 93%가 교육활동 침해로 판정됐다. 이쯤 되면 교실이 더는 교육의 장이 아닌, 감정의 격전지로 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적 장치는 도입됐다. 교권보호 5법이 통과되어 수업 방해 학생에 대한 분리 권한이 생겼고, 민원 대응 전담팀도 운영 중이다. 하지만 교사들의 체감은 냉랭하다. 제도는 마련됐으나, 실효는 요원하다.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는 익명 뒤에 숨고, 무고하거나 과장된 민원이 드러나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피해는 고스란히 교사의 몫이다. 교육 현장에서 ‘신뢰’라는 이름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교사가 믿음을 잃으면 교육은 그 뿌리부터 흔들린다. 교사가 존중받지 못하면 교육은 성립할 수 없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서로 불신하고 경계하는 관계에서 배움은 메마를 수밖에 없다. 교사의 권위는 학생을 억압하는 수단이 아니라, 학습을 가능케 하는 기반이다. 이 권위가 무너진 자리에 남는 것은 혼란뿐이다.
하지만 해법이 과거의 회귀여서는 안 된다. 과거처럼 강압적 훈육을 다시 꺼내드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일이다. 교권과 학생 인권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 속에 공존해야 할 가치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장하는 것과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은 양립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상호 신뢰와 존중의 토양을 되살리는 일이다. 그리고 그 토양을 복원하는 첫 단추는 바로 ‘교사의 사기 진작’이다.
교사는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다. 그들은 지식을 전수하는 전달자를 넘어, 다음 세대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교육자’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교사가 무너진다는 것은 내일의 대한민국이 흔들린다는 의미에 다를 바 없다. 교직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실현하는 전문직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지 못한다. 교사가 자긍심을 가질 수 있어야 교실이 살아나고, 국가의 미래가 다시 숨을 쉴 수 있다. 교사의 사기를 진작하는 대책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실질적 조치가 시급하다.
먼저, 악성 민원에 대한 실질적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무분별한 민원과 무고에 대해선 학부모에게도 일정 수준의 책임이 부과되어야 한다. 상호 책임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신뢰가 자랄 수 있다. 교사의 심리·정신건강을 보호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단순한 상담을 넘어 정기적 심리 검진, 전문적인 치유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교사는 감정 노동자인 동시에 정서적 돌봄의 주체다. 그들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학생을 지키는 일이다.
교육 현장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교사가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행정업무 과중과 각종 부차적인 책임으로부터 교사를 해방시키고, 교육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 전체가 교사에 대한 존중의 눈을 되찾는 일이다. 교사에 대한 존중은 그들의 노력에 대한 예의이자, 교육이라는 공공재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는 말은 단지 관념적 예의가 아니라, 교육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철학이었다.
학교는 교사가 살아야 살 수 있다. 교사의 눈에 희망이 있어야 교실에 생기가 돌고, 아이들의 미래도 밝아진다. 지금은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사회적 연대의 메시지를 전해야 할 때다. 교사들이 좌절하는 이유는 단지 힘든 현실 때문이 아니라, 그 고통을 외면받고 있다는 깊은 소외감 때문이다. 교육은 한 사람의 교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가정, 학교, 지역사회, 정부가 함께 짜야 할 거대한 그물망이다. 우리는 더 이상 ‘헌신은 당연하고, 존중은 생략 가능한’ 교사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아이 한 명의 인생을 바꾸는 교사의 힘을 국가가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교사의 상처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무너져가는 교육을 다시 세우고, 교육 선진국으로 가는 진정한 출발점이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