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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북을 역사적 상징으로만 소비하지 말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열흘 만에 다시 전북을 찾았다. 익산역 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그는 동학혁명의 정신을 소환하며, ‘모두가 존중받는 대동세상’을 강조했다. 동학의 뿌리가 전북에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촛불혁명과 5·18 민주화운동을 잇는 역사적 계보 위에 전북을 올려놓았다. 그러나 역사적 상징의 재소환은 있었지만, 유권자들이 실제로 기다렸던 것은 ‘기억의 환기’가 아니라 ‘전북의 미래에 대한 약속’이었다.

이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 국토균형발전,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 교육·기업 여건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첫 방문 때와 거의 비슷한 추상적 언급이 아니라 지역이 기대하는 구체적 공약 제시였으며, 유세에서 그 핵심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북을 방문하기 전 영남권을 돌며 조선업, 금융, 교통, 인구 문제 등에서 세부 사업명과 실현 방법까지 짚어가며 지역 민심을 얻었던 그의 행보와 비교하면 전북 방문은 형식적인 반복에 머물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부산 유세 현장에서 선거대책위원장인 전재수 의원이 HMM 본사 유치 확언을 이끌어낸 것처럼, 캠프와 지역 정치권의 역할이 전북에선 부재했던 것도 도민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전북도와 정치권은 ‘전북메가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65조 규모의 74개 공약사업을 제시한 바 있으나 후보가 이를 실질적으로 언급하거나 지지 의사를 밝히며 공약한 일은 없었다. 전북도민이 가장 큰 관심사인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재가동 문제조차도, 조선업 전반에 대한 일반론으로 뭉개졌다. 전북을 향한 메시지가 ‘도민을 위한 구체적 약속’이 아니라 ‘전국 유권자에게 던지는 상징적 수사’로 소비된 셈이다.

전북은 늘 ‘정권의 동지’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정작 정책에서 실질적 동반자로 인정받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많다. 광역권 개발, 재생에너지 거점 육성, 공공의료 확충, 새만금 국제공항 활주로 연장과 규모 확대 등 지역 발전의 관건이 되는 핵심 과제들은 아직도 공약 목록에만 존재할 뿐이다. 이 후보가 언급한 '국토균형발전'은 그 자체로는 선의의 명분에 불과하다. 구체성과 실현 로드맵이 없으면 실천은 없다.

정치권은 이제 '상징과 감성'이 아니라 '공약과 구조'로 전북을 대해야 한다. 전북은 단지 '동학혁명의 발상지'로 기억되기 위해 이재명 대선후보를 만난 것이 아니다. 우리 전북도민들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구체적 정책 설계자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민주당은 전북에서 반복되는 ‘공허한 약속의 순환’을 끊고, 실질적 변화를 약속해야 한다.

전북도민들이 진정 듣고자 하는 것은 “정신을 계승하자”는 수사적 언명이 아니라, 군산조선소 재가동의 시간표, 새만금공항 확장, 남원 제2중앙경찰학교 및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원 설립 등 눈에 보이는 실행 계획들이다. 선거는 기억의 싸움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계약이다. 후보가 진정으로 전북을 위한다면, 더 이상 전북을 역사적 상징에만 가두지 말고 그에 걸맞은 미래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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