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조기 대선을 10여 일 앞둔 지난 25일에 내란수괴 윤석열이 여론의 등살에 밀려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이러한 결단의 표면적 이유는 지지율 정체와 김문수 후보에 대한 민심의 냉담함이겠으나, 그 이면에는 보다 근본적인 현실 인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정치적 상징이 아니며, 오히려 내란수괴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헌정질서 파괴자의 얼굴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파괴적 행보를 걷기까지의 모든 과정에는 조용한 것 같지만 결정적인 공범이 있었다. 바로 언론이다.
윤석열은 정치의 문외한에서 검찰총장을 거쳐 대통령으로까지 승승장구했다. 그 과정은 실력보다는 상징, 명분보다는 이미지가 앞선 여론 조작의 연속이었다. 그의 거침없는 언행, 권위주의적 태도, 비합리적 정책 결정들에 대해 언론은 ‘야성의 귀환’이라며 박수를 보냈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그의 독선과 무능은 "검찰 개혁 저지",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허울로 포장되었다. 그가 국정운영을 독단적으로 이끌다 끝내 계엄을 선포하고 내란을 획책한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지만, 진정한 배신은 그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했던 언론이 그 행보를 가능케 했다는 데 있다. 언론은 그의 위험한 성향과 발언에 날을 세우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조명하고 띄우며 대중에게 윤석열이라는 인물을 허위로 포장했다.
더욱 참담한 것은, 내란 사태가 벌어지고 그의 파면이 확정된 지금에서야 언론들이 일제히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꿔 그를 ‘무책임하고 위험한 인물’이라 몰아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계엄령 선포 이후에도 한참 동안 ‘내란수괴’라는 단어조차 쓰지 못하던 언론이, 이제는 마치 누구보다 앞장서 정의의 심판을 요구하는 척 행동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언론은 권력의 견제자여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의 시대, 언론은 견제자는커녕 충실한 부역자이자 선전 도구가 되었다. 일부 언론은 마치 북한의 노동신문이라도 된 듯, 윤석열을 비판 없이 신격화하고 그의 정책과 발언을 포장하는 데 골몰했다.
윤석열이 검찰총장 시절 국감장에서 책상을 치며 검찰의 신성을 운운할 때, ‘카리스마’, ‘리더십’이라는 표현으로 그의 폭주를 미화한 것도 언론이었다. 권력이 무너지면 언론도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언론은 단순히 제 역할을 못 한 것이 아니다. 언론은 윤석열이라는 위험한 인물을 꽃가마에 태워 권력의 최정점에 오르는 데 앞장섰고,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며 그의 폭주를 묵인하고 방조했다. 내란이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가는 데에는 그의 개인적 성향만이 아니라, 비판과 검증을 포기한 언론의 태도가 결정적이었다.
지금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윤석열의 탈당을 분석하거나 그의 정치적 생명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이 참혹한 현실 앞에 자신들이 어떤 몫을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를 냉정히 돌아보아야 한다. 일부 극우 보수언론이 ‘윤석열의 정치적 결단’ 운운하는 기사를 내보내는 모습은 여전히 사태의 본질을 모른 채 과거의 미몽에서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론의 책임은 무겁다. 민주주의는 감시와 비판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윤석열 시대의 언론은 진실보다는 친분, 검증보다는 편향, 공익보다는 클릭 수를 좇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국가의 파국, 국민의 분열, 민주주의의 후퇴였다.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언론은 과연 반성하고 있는가? 이제라도 이들은 자신들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언론은 자신들의 오보나 왜곡에 대해 사과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기 위해 폐간이나 편집진 교체를 논의할 수 있는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윤석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권력에 아첨하고, 정의보다 권력을 선택한 한국 극우 보수언론의 총체적 실패다. 윤석열이라는 이름을 지우는 것만으로는 민주주의는 회복되지 않는다. 진정한 회복은, 언론이 스스로의 거울 앞에 서서 그간의 모든 행위와 침묵을 고백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보일 때 가능하다. 그 첫걸음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언론은 자신들의 절필을 고민하라. 정치인의 퇴장보다, 더 시급한 건 극우 보수언론의 반성과 쇄신이다. 윤석열을 만든 건 바로 당신들이다. 그렇다면 윤석열의 몰락 이후,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다시 세울 책임 역시 당신들이다.
민주주의는 단지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체제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권력자가 통치하는 모든 과정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감시하며,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건강한 공론장이 유지될 때 비로소 작동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 언론이 있다. 그래서 언론은 국민과 권력 사이의 가교이자,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 언론이 무기력하거나 편향될 때, 권력은 폭주하고 국민은 눈을 가린 채 절벽으로 향한다. 이제 언론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언론이었는가?’ 그 질문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는다면, 윤석열의 몰락은 또 다른 윤석열의 등장을 부추키는 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