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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어간다, 제 손으로… 대책이 필요하다

고상만 / 진실규명 대표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 있었던 사례이다. 그때 수도권 소재 구치소에 수감중인 재소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구치소에 수감중인 재소자가 자살했으니, 교정 당국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자살 방지 대책이 시급했다. 얼마 후, 법무부가 훈령을 통해 각급 교정 시설에 해결 방안을 전파했다. 그 내용을 듣고 나는 정말 놀랐다. 모든 감옥 내 창문을 모기장으로 촘촘히 막아버리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과연 법무부의 기대처럼 그 후 재소자 자살 문제는 해결되었을까?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우리나라 자살자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대통령실에 ‘자살예방 수석비서관’ 도입 및 ‘대통령 직속 자살 예방부서’ 설치 등을 검토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을 정도이다. 실제로 당선 후에는 보건복지부에 자살 예방과 관련된 정책 방안을 준비하라며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취임 후 첫 국무회의가 열린 6월 5일에는 당시 조홍규 복지부 장관에게 “우리나라 자살률이 왜 이리 높냐?”고 물었다고 한다. 자살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 대통령이 적극 대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국가’이다. ‘만년 1등’이라는 부끄러운 오명을 얻은지 오래되었다. 출산율은 고작 0.7%에 불과한데, 태어나 한창 일할 나이대인 우리나라 2, 30대 청년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24년 자살자 통계를 보면 더 심각하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자해 사망자는 1만 4439명으로 이는 2011년 이후 13년 만에 최대치라고 한다. 나눠보면 매일 39.5명이 자살한 것이며, 우리나라에서 1년간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망자의 5배가 넘는 숫자라고 하니 너무도 충격적인 사실 아닌가.

그렇다면 이러한 자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대책은 무엇일까.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다양한 공약을 제시했다. 먼저 24시간 전문의 상담이 가능한 정신건강 위기대응체계 구축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이외에도 공공과 민간이 참여하는 핫라인 24시간 전문의 상담체계, 지자체와 자살예방센터 및 민간기관이 자동 연계된 고위험군 관리, 그리고 국립정신건강센터 및 5개 국립정신병원 전담 인력 확충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지금까지 나온 역대 정부의 자살 방지 대책과 어떤 차별성이 있을까.

그동안 정부는 자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문제 해결을 위해 다각도로 계획을 수립한 후 실행해 왔으나 크게 다르지 않은 ‘대동소이한’ 실패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을 2010년 자살하는 재소자 문제 해결을 위해 ‘창틀을 막아 버린’ 법무부 훈령에서 봤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을 맨 재소자에게 그 억울함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목을 매지 못하게만 하면 된다는 식의 해법만 제시한 법무부.

하지만 국민의힘 김도읍 국회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입수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그후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재소자 자살은 24건이나 발생했다. 매년 평균 6명이 자살한 것이다. 창틀을 막는다고 자살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죽으려 한 진짜 이유는 그대로 둔 채, 자살할 방법만 없애 버리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해법이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가. 나는 자살자가 죽으려 한 이유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려는 노력이 진짜 해결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개인적인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어도 국가가 정책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해결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경제적 어려움으로 희망을 잃었거나 병이 들었는데 치료받을 돈이 없을 때, 또는 사법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해 삶에 의미를 잃은 사람 등등에게 뭔가 살아야 할 희망의 이유를 국가와 이 사회가 줘야 한다. 그들의 문제를 일일이 전부 해결해 줘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죽지 않고 살다 보면 희망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은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최소한의 인간적 삶이 보장되는 ‘복지국가’의 길을 가야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패자부활’이 쉽지 않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사회 복지제도가 거의 전무한 이 나라에서 경제적으로 한번 실패하면 다시 헤쳐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년에 경제적으로 실패한 이들이 절망하다가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는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런 현상이 이제는 2,30대 청년들 사이에서 더 일찍 번져가는 형국이다.

그러니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나라, 그리고 억울함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법 시스템을 갖춘 나라를 나는 요구한다. 거기에 더 해 정신과적 연계 상담이 이뤄져야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이런 것도 없이 그저 구치소 창틀만 막아버리는 한심한 정책으로는 잘 적응하며 살아오던 사람까지 죽인다. 그런 어리석은 정책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이재명 정부에서 이전과는 다른 자살 방지 정책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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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외부원고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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