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 결과에 대한 국내 반응은 ‘선방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뼛속까지 친미사대적인 내란극우세력은 미국이 원하는 것을 한국이 다 들어줘야 한다는 매국적 입장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들의 반응은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 민주진보 세력은 미국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면 선방한 것이라며 협상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한국 정부가 뛰어난 협상력을 발휘하여 달성한 최선의 결과라면서 기뻐하기도 한다. 단지 일부 진보세력만이 강도적인 미국의 요구에 굴복한 협상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낼 뿐이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위기를 자국 내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같은 근본적인 개혁이 아니라 지구촌, 특히 전통적인 미국의 동맹국들에 대한 노골적인 강도질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을 포함하는 인류는 미국한테 강탈을 당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은 미국의 강도적 요구를 단호히 거부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은 날강도 미국에 당당히 맞서기보다는 ‘100억 원을 뺏으려고 했던 미국과 협상을 잘해서 30억 원만 뜯기게 되었다’면서 안도하고 심지어는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는 왜 미국에 강력하게 맞서지 못했을까? 트럼프를 압박할 카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뼛속까지 장사꾼이다. 그에게 협상이란 단지 이익을 주고받는 거래일 뿐이다. 만일 상대방한테 자기에게 줄 이익이나 자기를 압박할 카드가 없다면 트럼프는 곧바로 강도로 돌변한다. 몇 달 전에 있었던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백악관 회동은 이를 잘 보여준다. 젤렌스키는 자기 분수도 모르고 객기를 부렸지만 트럼프한테서 “너한테는 카드가 없잖아”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만 했다. ‘너한테 카드가 없으면 내가 요구하는 대로 해야만 한다’는 것이 트럼프의 잔혹한 계산법이다. 즉 주고받기 식의 대등한 협상은 가진 것이 있는 상대 혹은 강한 상대하고나 하는 것이지 빈털터리 혹은 약한 상대는 단지 탈탈 털어먹을 봉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트럼프를 압박할 수 있는 카드를 준비하지 못한 채 관세 협상에 임했다. 한국이 트럼프를 압박하거나 설득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반미의식이 충만한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다. 만일 반미의식으로 무장된 한국 국민들이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면 이재명 정부는 국민들을 믿고, 국민들에게 의지하면서 미국과 맞설 수 있었을 것이다. 약소국으로 평가되는 예멘이 미국에 당당히 맞서고 있는 것은 그 나라 국민들의 반미의식이 투철해서다. 그러나 한국에는 여전히 미국을 하늘처럼 받드는 내란 극우세력이 활개를 치고 있으며 일반 국민들은 공미(恐美), 숭미(崇美)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공미 심리가 기승을 부리게 된 출발점은 해방 직후 미군의 한국 점령과 이어진 한국인들에 대한 대량 학살이다. 해방 이후 한국인들은 미군정 아래에서 사대매국적이고 반국민적인 이승만 정부의 뒷배인 미국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참혹한 패배와 피바다를 경험하면서 미국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시기 미군의 학살과 무차별적인 융단폭격 등은 한국인들의 공미 심리를 한층 강화했다.
이후 한국에서는 공미를 기초로 삼는 숭미주의가 전면화되기 시작했다. 원시인들의 맹수 숭배 현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공포의 대상을 차라리 숭배함으로써 자신의 공포감을 방어하고 합리화한다. 공미 심리는 무엇보다 견디기가 몹시 힘들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그것을 숭미로 포장하거나 대체하기 시작했다. 즉 한국인들은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을 한국을 전쟁과 빈곤의 수렁에서 구해준 은인 나라이자 민주주의의 종주국, 최고의 선진국으로 여기면서 떠받들고 숭배하게 된 것이다.
트럼프 시대와 윤석열 내란을 경험하면서 다수의 한국인들은 미국에 대한 환상, 즉 숭미주의에서는 벗어나기 시작했다. 내란 극우세력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트럼프의 강도질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며 부정의하다고 생각하는 수준까지는 도달한 것이다. 숭미의 외피가 벗겨지면 그 아래 숨어있던 공미가 드러나는 법이다. 한국인들은 미국을 숭배할 가치가 없는 깡패국가로 인식하는 데까지는 나아갔지만 여전히 미국에 대한 공포, 즉 공미 심리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공포는, 미국이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한국과 미국의 국력 차이를 고려할 때 한국이 미국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불가하다는 패배주의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13척의 배만 가지고 있는 한국이 어떻게 130척 넘는 배를 가지고 있는 미국과 싸울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번 관세협상 결과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은 공미에 기초하는 미국에 대한 패배주의가 심각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이 하루빨리 공미에서 해방되지 못한다면 한국은 앞으로도 계속될 미국의 압박과 수탈을 막아낼 수 없게 되어 궁극적으로는 멸망하게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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